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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험지’서 생환한 20대 선량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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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8 21:04:20 수정 : 2016-04-28 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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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1인 헌법기관
아무나 앉을 자리가 아니다
4년 후 선거철에 또다시
기만적 술수 쓰지 않으려면
적어도 정상배 노릇은 해야
벌써 보름 넘게 지났습니다. 4·13 총선의 흙먼지가 가라앉아도 될 시점이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혼미합니다. 20대 국회의 예고편 격으로 요즘 전개되는 여야 간 혹은 여야 내부의 각축을 보노라면 현기증마저 도질 지경입니다. 희망의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요. 결국, 20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소명의식밖에 달리 기댈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뒤늦게나마 축하인사를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험지(險地)에서 의사당 가는 꽃가마를 잡아타다니요. 하지만 마냥 기뻐해도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지정학 리스크, 청년실업, 구조개혁 등 국가적 난제가 널려 있으니까요. 준비 없이 나섰다간 19대에 못지않게 헤매기 십상입니다. 꽃가마 탔다고 우쭐댈 계제가 아닙니다. 큰코 다칩니다. 적어도 4년 후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요.

이승현 논설위원
성찰과 각성이 시급합니다. 가장 급한 것은 이런 물음입니다. 정치가 왜 손가락질을 받게 된 걸까요. 달리 물어도 됩니다. 4·13 선거구는 왜 험지였던 걸까요. 과녁을 좁혀, 여야 책사들이 퍼뜨렸던 ‘험지론’이 적절했는지만 따져봐도 좋겠습니다. 왜냐고요? 무례하고 부당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용례에만 견줘도 그 부적절성이 한눈에 드러납니다. 우리 정치의 민망한 얼굴도 고스란히 비치고요.

고대 병법서를 대표하는 ‘손자’를 들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計)’편에 “천시와 지리는 어느 쪽이 장악할 수 있느냐”를 묻는 대목이 있지요. 거기에 험지가 나옵니다. 험이(險易)라 돼 있지요. 병법의 땅(地)은 통상 무인지지(無人之地)와 유인지지(有人之地)로 나뉩니다. 이 중 무인지지는 사람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형·지세입니다. 험이가 이에 속하지요. 경사도를 뜻합니다.

이렇게 보면, 실로 자명합니다. 지세가 험준해 수직에 가까우면 험지입니다. 정반대로 평탄하면 이지(易地)이고요. 혹시 총선 때 누빈 선거구가 낭떠러지 지형이던가요? 그럴 턱이 없지요. 정치권은 사지(死地) 생지(生地) 같은, 사람 기운이 작동하는 유인지지 용례에서 합당한 어휘를 골라야 했습니다. 예전엔 그렇게들 했지요. 흔히 사지니 적지니, 호들갑을 떨며 남의 등을 떠밀지 않았습니까.

올해 4·13 총선에서 횡행했던 험지론은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요. 혹세무민의 말 장난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유권자도 현혹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치권의 궁핍한 신세를 웅변한 기만적 술수에 지나지 않았던 거지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자기네가 잘못해 민심이반을 초래하고서 멀쩡한 선거구를 모함하다니요.

국회의원은 국운을 짊어진 1인 헌법기관입니다. 아무나 앉을 자리가 아니지요. 나폴레옹은 “무능한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부도덕한 것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19대는 어땠나요. 총선 국면에서 새누리당은 ‘운동권 정당 심판’을,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실정 심판’을 주장했지요. 국민의당은 “새누리는 오만하고 더민주는 동네조폭과 다를 바 없다”고 목청을 높였고요. 다 맞는 말들이었습니다.

19대는 그토록 가관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비웃을 만큼 무능했고 부도덕했지요. 바로 그랬기에 여야 공히 4년 임기 끝에 뚱딴지같은 험지 타령을 늘어놓으면서 표를 구걸해야 했고요. 20대 국회 문이 열릴 5월30일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결단의 시간입니다.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19대를 답습하는 것, 다른 하나는 19대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 과연 어느 쪽인가요?

정치가와 정상배를 나누는 구분법은 20대 선량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명언도 있으니까요. 여러분께 정치가 역할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바랄 걸 바라야지요. 우리 국민의 꿈은 소박합니다. 20대 선량이 그저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정상배 노릇만 착실히 해줘도 감지덕지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소박한 바람조차 등한시한다면? 4년 후에 또 웃기지도 않은 험지 타령이 울려퍼지겠지요. 난감한 일이 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등 뒤에서 나지막이 응원 구호를 외쳐봅니다. ‘가자, 가자, 정상배!’라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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