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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여의도 시스터스’의 반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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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3 20:03:22 수정 : 2016-05-03 20: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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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양성 높은 조직
소통 늘고 더 나은 결정
51명의 여성 당선자
소통·타협 문화 키우고
계파 정치 깨는 역할하길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 2009년 다보스포럼에서는 ‘월가에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아니라 리먼 시스터스(Lehman Sisters)가 있었다면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파산하는 바람에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회사명을 빗대 남성들의 공격성 투자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경제장관을 비롯한 참석자 대부분이 “여성들이 보다 신중한 편”이라며 ‘리먼 시스터스’의 손을 들어줬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도 최근 한 신문 연재물에 “조직 내 의사결정권자 성비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위기는 달랐을지 모른다고 썼다.

당시 다보스포럼 토론에서 인상 깊었던 건 세계여성지도자평의회 사무총장인 로라 리스우드의 발언이었다. 그는 “‘리먼 브러더스 앤드 시스터스’가 이상적인 답”이라고 했다. 성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직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얘기다. 리스우드는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글을 지난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실었다. 여기에는 이사회의 40%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한 노르웨이 기업 사례에 관한 아론 디르 요크대학 교수의 연구 결과가 포함돼 있다. 디르 교수는 할당제 도입 전후를 모두 경험한 남녀 이사 2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 이사들이 남성 이사들과는 다른 관점, 경험, 전망을 내놓으면서 의사 결정은 물론 이사회 지배구조, 그룹 내 역학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소통 증대, 효율적인 위기 관리, 파벌주의 희석화 등이 ‘성 다양화’에 따른 주요 긍정적 결과였다.

황정미 논설위원
성 다양성 문제가 기업뿐 아니라 정·관계 화두가 된 지는 오래다. 하지만 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장관 30명 중 15명을 여성으로 임명해 화제가 됐다. 이유를 묻자 “지금은 2015년”이라고 답한 그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유리 장벽’ 깨지는 속도가 빨라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으나 결과는 달랐다. 현 내각에 여성 장관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1명뿐이다. 국내 상장 기업 가운데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2013년 기준 14개사 13명으로 0.73%에 불과했다. 이런 탓에 국제기구의 양성평등지수는 100위권 아래에 머물러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4·13 총선 결과 50명이 넘는 여성 후보들이 당선된 건 눈여겨볼 만하다. 16대 21명(5.9%), 17대 39(13%), 18대 41(13.7%), 19대 47(15.7%), 20대 51명(17%)으로 해마다 늘긴 했지만 지역구 생환 의원이 역대 최다인 점이 두드러진다. 50% 할당제에 기댄 비례대표 수(25명)보다 유권자들의 직접 선택을 받은 지역구 의원(26명)이 더 많은 건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5선), 새누리당 나경원·더민주 박영선·국민의당 조배숙(이상 4선)을 포함해 3선 이상 의원만 11명이다. 당 대표 도전 의사를 밝힌 추미애, 역시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박영선, 여당 첫 여성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던 나경원 등 그간 ‘가뭄에 콩 나듯’ 했던 당직, 국회직에 나설 여성 의원이 많아질 것이다.

여성 의원들이 20대 국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를 품게 된다. 여소야대의 3당 체제인 20대 국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인 소통은 여성의 장점으로 꼽힌다. 소통·협력 정치가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계파 정치를 깨야 하는데, 여성 의원들이 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계파 정치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이유도 있고 계파도 권력인데 잘 끼워주지도 않는다.” 재선인 한 여성 의원의 말이다. ‘친박’을 만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수적으로 열세이긴 하다. 그래도 새로운 정치문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내 민주화, 혁신을 막는 계파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게 총선 민심이었다. 이에 응답하는 ‘여의도 시스터스’가 많기를 소망한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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