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백영철칼럼] 안철수의 시대적 책무

관련이슈 백영철 칼럼

입력 : 2016-05-10 22:38:15 수정 : 2016-05-10 22:38: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천시와 지리 얻었지만 민심과 멀어져
민생 개혁 앞장서는 큰 정치 펼쳐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데 이어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장면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사람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일 것이다. 민심의 변화 욕구에 제때 올라탄 사람으로서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치 경험이 없는 트럼프와 두테르테는 막말을 일삼으며 기성 정치 행태에 신물을 내는 지지자들을 모아 세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안 대표 또한 4·13총선에서 ‘제3당론’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 20대 국회를 좌지우지할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안 대표의 품격과 한국인의 수준이 그들과는 차이가 나지만 근본적으로 민심의 흐름은 대동소이하다. 모두 기득권을 배척하고 새로운 정치를 원하고 있다. 

백영철 편집인
안 대표가 한 축이 되면서 20대 국회는 솥발의 형세가 됐다. 삼자정립(鼎立)은 분열과 대립의 관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조다. ‘삼국지’처럼 북쪽의 위나라, 동쪽의 오나라에 맞서 서쪽을 근거지로 촉나라가 들어선 형국이다. 유비는 서쪽에 자리 잡으면서 위를 멸망시키고 오를 병합하면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 대표도 유비처럼 천하삼분지계를 생각했을 것이다. 내실을 다져 더불어민주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다음 새누리당과 정면승부를 벌여 대권을 쥘 수도 있다. 헛된 꿈은 아니다.

일을 이루려면 적기에, 적소에서 움직여야 한다. 맹자는 “천하패권을 쥐려면 천시와 지리, 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점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것도 유리하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순신 장군이 ‘무호남 무국가’라고 하지 않았나. 나라 안팎이 위험 신호로 가득 차 있는 이때 안 대표는 천시에 이어 지리까지 낚아챈 셈이다.

결정적인 것은 인화다. 맹자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했다. 인화는 곧 국민의 마음이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 점에서 국민의당이 제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민의당이 원내사령관으로 박지원 의원을 내세운 것은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그에게 흠이 많아 새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는 않다. 그럼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을 선봉으로 삼았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삼자정립 시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병(兵)은 궤도(詭道)”라고 말한 손자병법의 정신에 충실한 행보가 아닌가. 책략과 임기응변적 대처능력 없이는 싸움판을 쉽게 이끌지 못한다. 현실적인 측면은 인정된다. 그렇더라도 대의명분을 멀리하고 거래와 흥정으로 비쳐지는 잔재주에 의존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새누리당과의 연정론, 국회의장 거래론 등으로 국민의당 호남지지율은 급락했다. 최근 국민의당에서 나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민심과 어긋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당이 원구성 협상에 나서면서 상임위 분할을 요구하는 것도 번지수를 착각한 행동이다. 소속 의원의 감투를 한두 개 더 만들려다 국민의 마음을 송두리째 잃게 될 것이다. 시급히 방향 수정을 하지 않으면 민심 이반 열기가 호남선을 타고 북상할지도 모른다.

캐스팅보터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은 어렵지 않다. 요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여야 의석 섞어 앉기나 상임위 증가 반대라는 개혁적인 입장은 국민의당에서 나와야 하는 의제다. 집권당인 데다 친여 무소속 의원이 여럿 있지만 그래도 총선에서 얻은 제2당의 위치에서 원구성 협상을 하겠다는 새누리당의 태도는 겸손하고 올바르다. 국민의당은 이제라도 무노동 무임금의 국회 적용, 민생법안의 처리를 위한 적극적 노력 등 실사구시 행동으로 국회를 이끌어야 한다. 흥정을 위한 계산기를 내다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노련미보다는 패기가 있어야 국민 성원이 답지할 것이다.

한국의 위기지수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등 온갖 변수로 국가 안보는 짙은 먹구름에 쌓여 있다.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치 리더십마저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정치리스크가 국가 안보와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실정이다. 집권세력이 민심의 경고장을 받아 아무 일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나라의 위기를 자신들의 위기로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앞장서서 행동해야 한다. 그게 새정치의 구현을 바라면서 제3당에 힘을 실어준 민심의 뜻에 부합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삼국지로 돌아가자면, 유비만 해도 20살이나 아래인 제갈공명을 삼고초려하는 포용력에다 부하 중에 관우, 장비, 조운 같은 일기당천의 무장들이 즐비했다. 덕치 리더십과 한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점도 대의명분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비는 승자가 되지 못했다. 맞상대인 조조의 기반이 더 넓었고 능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안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국민의당엔 “담대한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구호가 휘날리고 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은 그것과 정반대다. 일시적 손해를 보더라도 대국을 보는 큰 정치를 펼치지 않고서는 국민의당의 생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백영철 편집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