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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질 바르비에가 던진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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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3 20:04:58 수정 : 2016-05-13 20: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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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얽매인 사고와 문화
깨고 부수는 의미있는 실험
예기치 않은 우연이 창조의 힘
주사위 던지듯 가능성을 열고
능동적으로 창조를 즐겨야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 태생으로 20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마르세유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마르세유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질 바르비에(Gilles Barbier·1965∼)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갖고 있다. 얼마 전 마르세유를 방문했을 때 작품으로 만났던 작가다. 그는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가장 어색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두가 프랑스어만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10대를 바누아투에서 보낸 그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1980년 독립하기 이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통치했던 바누아투에서는 비슬라마어, 영어, 프랑스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가 학용품을 구입하려 해도 어떤 가게에서는 프랑스어를 해야 했고 또 다른 가게에서는 영어를 써야 했다.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세계화 바람이 불고 10대를 보냈던 바누아투 언어환경이 역으로 프랑스에 요구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했던 하나의 언어와 문화, 국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 문화, 국가라는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닐까. 특정 종교와 이데올로기라는 새장도 있을 것이다.

이런 통찰에서 나온 그의 작업방식은 루크 라인하르트의 소설 ‘인간 주사위’의 주인공을 닮았다. 단단한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해 던져진 주사위에 따라 체스판을 움직이듯 작품을 풀어간다. 주사위 알고리즘 작업방식이라 할 수 있다. 주사위 던지기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이성이라는 힘이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틀이나 담론에 함몰돼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주사위 놀음은 주체성의 환기인 셈이다. 방망이가 머리를 으악스럽게 내리쳐 머리가 구겨진 모습의 작품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기존의 사고체계, 의식들을 철저하게 부셔보고 해체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이성의 시대라 불리던 17세기 이후, 인간은 합리성이라는 확실성의 틀에 갇혀 왔다. 적어도 양자역학이 ‘우연의 시대’를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20세기의 물리학은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단번에 깨뜨려 버렸다. 소립자가 일정한 법칙에 의해 일정한 값을 가지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밝혀낸 양자역학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기존의 사고관을 전복시킴으로써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바야흐로 ‘우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물리학자 볼츠만은 세계는 항상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통념을 깨고 항상 질서에서 무질서로 흐른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발표했다. 수학자인 괴델은 ‘불완정성의 정리’를 통해 수학적 논리체계로 모든 명제를 증명할 수 있다는 기존의 믿음을 깨고 인간의 인식에 언제나 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질 바르비에는 적어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슈테판 클라인의 ‘우연의 법칙’을 읽었을 것이다.

영어의 ‘Chance’는 우연을 뜻하는 동시에 ‘기회’ 혹은 ‘행운’을 의미한다. 인간의 강점은 우연으로 열려져 행운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성이다. 예기치 않은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는 일은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예술창작이 그렇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그렇다.

역사 역시 끊임없는 우연의 연속이다. 인간 개개인의 삶에서도 우연은 수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꼼꼼하게 계획된 작업을 진행할 때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쉴 새 없이 들이닥치게 마련이다. 한반도 상황도 그렇다. 우리는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우연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가를 직시한 바 있다.

예술작품을 창작하듯 이런저런 주사위를 던져봐야 한다. 우연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능동적으로 즐길 필요가 있다. 시련과 두려움으로 인해 우연성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주사위 놀이다. 이것이 질 바르비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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