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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멍’ 한번 때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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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0 20:10:57 수정 : 2016-05-20 20: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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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긴장에 쫓기는 피로사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나를 위한 쉼표 필요
침묵의 가치 알아야 영혼 지켜
예전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멍하게 넋을 놓고 창문을 보고 있으면 바로 선생님의 분필저격이 이어졌다. 교단 위 선생님이 ‘탁’ 하고 분필을 정통으로 학생의 이마에 명중시키곤 했다. 5월이라 자전거대회, 맨발걷기 대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그중 22일에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뇌를 탁 트인 한강에서 쉬게 하자’는 주제로 열리는 대회란다. ‘멍때리기’라는 말은 정신이 나간 상태, 반응이 없는 상태, 넋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흔히 ‘벙찌다’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멍때리기 대회라니.

여성들은 때로 시간이 없어 아침 출근길에 말리지도 않은 머리를 한 채 버스를 타기도 한다. 직장인들은 시간에 쫓겨 회사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학생들은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김밥이나 삼각김밥을 먹으며 길을 걸어다닌다. 오죽하면 패스트푸드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현대인들은 패스트, 빠른 것을 좋아한다. 빠르다는 것은 능률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샐러리맨들은 노동시간에 비례해 노동대가를 받고 있다. 현대인에게 시간이란 화폐의 다른 이름이다. 시간은 그야말로 ‘금’인 것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그런 점에서 현대인에게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은 죄악인지도 모른다. 해서인지 일분일초도 아끼며 일분일초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다. 그렇게 ‘영양가 있게’ 보낸 시간들이 지금의 기계문명을 만들었다. 이제 대중들은 스마트폰으로 TV 뉴스 보다도 먼저 뉴스를 접한다. 소셜네트워크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의 거대한 강을 만들어냈다. 언론의 뉴스보다 네티즌들이 더 발빠르게 뉴스를 전달하며 퍼나르고 있다.

그토록 시간을 아끼고 그토록 빠른 광속도로 접속하며 우리가 도달한 ‘지금, 여기’ 현재는 어떤가.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시간이 부족하고 과거보다 훨씬 분주하기만 하다. 과거보다 훨씬 조급증을 내고 과거보다 훨씬 긴장하고 있다. 무엇이 이와 같은 조급증을 만들어낸 것인가. 이와 같은 불안증을 만들어낸 것인가. 남들보다 좀더 빨리 뭔가를 하지 못해 걱정하고 좀더 많이 뭔가를 달성하지 못해 안달한다.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피로사회’는 이미 우리 스스로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노예이다. 우리는 시간을 도둑맞은 것이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이렇게 진행된다고 한다. 3시간 동안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자기, 시간 확인, 잡담하기. 음식 섭취, 웃음, 책 읽거나 낙서 같은 딴짓, 기타 상식적인 멍때리기에 어긋나는 행위는 규칙 위반에 해당한다고 한다. 잠시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휴대전화를 놓을 수 있을까.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책읽기도 말도 하지 않고 오직 정신을 놓은 채 있는 3시간. 이것은 스님들이 하는 동안거, 하안거의 수행과 닮아 있다. 잡다한 지식의 홍수 속에서 그 지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시간. 내 인생을 다른 의지에 의해 끌려가지 않도록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무수한 외부적인 소음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시간. 그것은 침묵의 시간이고 고독의 시간이다.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이다.

우리의 영혼을 지키려면 이 침묵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밤에 잠을 자면서도 낮의 꿈을 꾸는 현대인, 뇌를 쉬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복잡한 얽힘에서 멍때리기 시작이 필요하다. 무수한 말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지켜낼 필요가 있다.

나는 대회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이 흥미진진한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 한강으로 달려가 멍때리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찾고 있지만 침묵에 머무는 사람만이 결국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법정의 말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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