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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여소야대와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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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7 22:21:27 수정 : 2016-06-07 22: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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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야 3당 4개 청문회 추진
귀기울여 듣고 판단한다는데
여야 함께 활성화 방안 찾아
민주주의 뿌리내리게 해야
청문(聽聞)은 귀기울여 관심 있게 듣는 것을 뜻한다. 유교 경전인 ‘서경’에서 은나라 탕임금이 하나라 폭군 걸임금을 정벌할 때 명분으로 내건 말에 나온다. “하물며 내가 착하게 가르치는 말을 족히 경청해 들었겠는가(?予之德言 足聽聞).” 조선 후기 유학자 최한기는 ‘기측제의’에서 “무릇 청문하는 도(道)는 세밀하게 힘쓰지 않으면 밝게 살필 수 없고, 차츰차츰 쌓이지 않으면 깊이 이를 수 없다”며 “희로애락과 시비와 선악이 모두 청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또한 청문으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청문은 남의 말을 듣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현명하게 판단하는 데 이르는 폭넓은 개념인 것이다.

청문회는 국회가 의정활동 과정에서 현안 관련 사실 규명이나 입법 정보 수집 등을 위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는 제도다. 미 의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오래전 미 의회 청문회를 지켜본 적이 있다. 회기 중에 상·하원 상임위와 소위가 현안별로 각종 청문회를 열다 보니 많게는 하루 수십 건에 달한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현안에 관한 견해나 제안을 내놓고 질문을 한다. 주요 현안이 아니면 부처 실·국장이나 실무 책임자가 나서서 답변하고 설명한다. 민간 전문가나 시민단체 대표 등도 참석해 다양한 주장을 편다. 현안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자리다.

박완규 논설위원
2004년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가 기억에 남는다. 그해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존 케리 상원의원(현 국무장관)이 바쁜 와중에 참석했다. 대선 쟁점과 무관한 한반도 관련 청문회였는데, 원고도 보지 않고 정확한 표현을 쓰면서 논리정연하게 얘기했다. 한반도 현안을 꿰뚫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이러니 청문회가 일찍이 정착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청문회 제도가 도입됐다. 그해 13대 총선에서 정당정치가 정착된 이래 최초로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된 데 힘입었다.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당 간 정책 경쟁, 대화, 협상, 타협 등과 같은 의회주의의 본질적 요소가 정당정치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평가다. 5공 적폐를 치우고 가자는 데 여야가 합의함에 따라 5공 비리, 광주민주화운동, 언론통폐합에 관한 일련의 청문회가 열렸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온갖 소문의 실체와 새로운 비리를 들춰냈고, 국민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다소나마 풀어냈다.

여소야대 구도가 재연된 20대 국회에서 청문회가 쟁점이 됐다. 지난달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청문회 활성화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했다. 이에 야 3당은 현행법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진상규명 청문회 등 4개 청문회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국회의 모든 상임위에서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보다 많을 것이기에 해볼 만한 일이 된 것이다.

청문회는 여야가 싸울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활성화 방안을 찾을 만한 일이다. 여야 합의의 원칙과 청문회 본연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개최 요건 등을 면밀히 규정하는 데 집중하면 그럴싸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현행 국정감사를 청문회로 대체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 결과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 응답 비율(59%)이 반대 응답(26%)의 2배가 넘었다. 국민 다수가 청문회 활성화를 지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청문회에 임하는 국회의원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 성실하게 준비하고 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청문회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과거에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이 불콰한 낯빛으로 졸다가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갑자기 일어나 호통치던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의 막말·갑질에 대한 불신이 사라져야 청문회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잦아들 것이다.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은 모든 토론과 협의의 첫걸음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다. 청문회가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라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려면 20대 국회가 정치력을 발휘해 새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어준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청문회 활성화는 새 길의 이정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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