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할 수 없는 넓은 세상 나비가 된 느낌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니 시원한 바다의 추억이 마음을 간질인다. 더위에 시달릴 때 멋진 바다사진 한 장과 김기림의 시를 떠올리며 힘을 내곤 한다.
잊을 수 없는 바다의 추억 중 하나, 유럽여행 초보시절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맞이한 뜻밖의 풍경이었다. ‘여행시간이 꽤 길 테니 잠을 자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조금 읽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시끄러운 방송소리가 나자 승객이 웅성거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웬 날벼락인가 싶어 무작정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들고 내렸다. 사고가 나 기차를 바꿔 타야 하는 상황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웬걸, 나만 무거운 여행가방을 양손에 쥔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함부르크와 코펜하겐 사이에는 드넓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고, 10량이 넘는 커다란 기차가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페리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정여울 작가 |
나는 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 위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여행길 위에서 나는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바다와 마주했고, 그 바다의 자궁 속에서 비로소 다시 태어났다. 그 순간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 등장하는 한 마리 나비가 된 것 같았다. 아무도 그 수심을 일러주지 않았기에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전혀 모르는 작은 나비가 돼버린 기분.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내가 가늠하지 못하는 드넓은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바다가 아무리 넓더라도 나비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바닷물에 날개가 젖어 온몸이 찢어질 것만 같아도,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가 보았더니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진 그 푸르른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향해 용기를 내 도전할 때, 우리는 모두 이렇게 ‘바다’라는 거대한 청무우밭에서 향기로운 꽃을 찾아헤매는 나비의 심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꽃을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으련다. 처음부터 바다에는 결코 꽃이 피지 않음을 알고 있을지라도, 나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를 향한 동경’을 멈출 수 없다.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엔진이니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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