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정여울의문학기행] 바다의 숨결이 나를 위로할 때

관련이슈 정여울의 문학기행

입력 : 2016-06-09 21:55:41 수정 : 2016-06-16 07:35:3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함부르크∼코펜하겐 광활한 바다의 전율
가늠할 수 없는 넓은 세상 나비가 된 느낌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니 시원한 바다의 추억이 마음을 간질인다. 더위에 시달릴 때 멋진 바다사진 한 장과 김기림의 시를 떠올리며 힘을 내곤 한다.

잊을 수 없는 바다의 추억 중 하나, 유럽여행 초보시절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맞이한 뜻밖의 풍경이었다. ‘여행시간이 꽤 길 테니 잠을 자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조금 읽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시끄러운 방송소리가 나자 승객이 웅성거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웬 날벼락인가 싶어 무작정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들고 내렸다. 사고가 나 기차를 바꿔 타야 하는 상황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웬걸, 나만 무거운 여행가방을 양손에 쥔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함부르크와 코펜하겐 사이에는 드넓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고, 10량이 넘는 커다란 기차가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페리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정여울 작가
커다란 기차가 그보다 더 커다란 페리 속으로 속속 들어가는 장면은 마치 성경 속에서 요나가 고래의 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장엄한 광경이었다. 잠 덜 깬 눈으로 페리 바깥으로 펼쳐진 눈부신 바다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그토록 광활한 바다를 보게 될 줄이야. 바다를 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바다를 발견한 순간은 뜻밖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쌍무지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마치 거대한 커튼처럼 화려하게 드리운 쌍무지개의 위용은 하늘로 올라가는 총천연색 깃발처럼 눈부시게 펄럭였다.

나는 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 위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여행길 위에서 나는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바다와 마주했고, 그 바다의 자궁 속에서 비로소 다시 태어났다. 그 순간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 등장하는 한 마리 나비가 된 것 같았다. 아무도 그 수심을 일러주지 않았기에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전혀 모르는 작은 나비가 돼버린 기분.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내가 가늠하지 못하는 드넓은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가 아무리 넓더라도 나비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바닷물에 날개가 젖어 온몸이 찢어질 것만 같아도,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가 보았더니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진 그 푸르른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향해 용기를 내 도전할 때, 우리는 모두 이렇게 ‘바다’라는 거대한 청무우밭에서 향기로운 꽃을 찾아헤매는 나비의 심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꽃을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으련다. 처음부터 바다에는 결코 꽃이 피지 않음을 알고 있을지라도, 나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를 향한 동경’을 멈출 수 없다.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엔진이니까.

정여울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