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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술계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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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10 20:57:53 수정 : 2016-06-10 20: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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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 천경자 위작 파동
그림을 예술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로 따지는 세태 탓
묵묵히 예술혼 불태우는
다수의 화가들 고통 주면 안돼
미술계가 시끄럽다. 가수 조영남이 화투 그림을 대리 제작시켰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사건이 그렇게 제작된 작품이 300점을 넘고, 대리 제작한 화가도 3명 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1991년 천경자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사건도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중에 유통된 이우환 화백의 작품 중 일부가 위작으로 판명됐다는 검찰 주장과 그 주장에 불신을 나타내는 이 화백의 입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미술계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충격과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왜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미술작품을 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예술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미술작품이 상품으로 다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모든 것을 소비 중심으로 평가하고, 미술작품도 상품으로서 교환가치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화 현상은 미술작품 고유의 가치에 매달려온 현대미술 작가들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안겨 줬다. 그래서 등장한 미술이 상품으로 소유할 수 없는 형태의 작품인 대지미술이나 개념미술이다. 전시장이 아닌 자연과 주변 환경 속에 작품을 설치했던 대지미술이 그렇고, 진정한 예술은 소유 가능한 물질이 아닌 예술가의 머릿속에 있는 개념이나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던 개념미술이 그렇다. 하지만 거센 미술시장은 이 작품들의 아이디어 자체까지도 다시 상품으로 만들어냈고, 미술가들이 새로운 반발을 만들어내면서 미술의 역사가 흘러왔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조영남은 노래나 열심히 부를 걸 취미로 그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욕심 냈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을 예술적 가치로 대하기보다 경제적 가치로 생각한 때문이다. 아이디어만은 자신의 것이라는 어설픈 미술사 지식을 들이대는 바람에 묵묵히 그림을 그려온 진정한 미술가의 가슴에 고통도 안겨주었다.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일 천경자 화백이나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된다면,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손상이 갈 것이다. 미술작품을 경제적 가치만으로 생각한 누군가에 의해 위작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손상의 가장 큰 몫은 미술가, 미술애호가, 그리고 미술계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이 걱정이다.

이런 일로 필자가 우려하는 또 다른 점은 미술작품을 예술적 가치가 아닌 경제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닌데. 19세기에 수백달러였던 인상주의 그림이 오늘날 수만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린다고 해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수만 배 더 나아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더 좋아하고, 그 작품이 ‘모나리자’만큼의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해도 두 그림을 같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허스트의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술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작품의 수요와 공급, 인플레이션, 당대의 유행 등 예술적 가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요인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미술협회에 등록된 작가가 3만1800명인데 작품이 거래되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만 2008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경매를 통해 작품이 한 점이라도 팔리는 작가는 400명 선이라고 한다. 극히 일부 작가 작품만 거래된다는 것이고, 앞만 보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작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경제적 가치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만 판단하려는 사회인데 미술작품마저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삶이 더 삭막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도 걱정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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