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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호랑이 그린다더니 고양이로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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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14 18:12:11 수정 : 2016-06-14 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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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특단 대책 주문에
표 떨어질라 경유차 규제 제동
정책 패러다임 바꿀 기회 놓쳐
에너지 정책 큰 틀의 변화 없이
다음 정권으로 책임 떠넘겨
몇 년 전 덴마크 출장길에서 눈길을 끈 건 도로를 메운 자전거 행렬과 자전거용 신호등이었다. 수도 코펜하겐 시민의 절반 가량이 자전거를 애용하는 건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덕분이지만 차량 유지비가 비싼 이유도 있다. 차 가격은 유럽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데 등록세, 부가세 등 세금이 차 가격의 두 배 이상 된다. 덴마크 정부가 1970년대 이후 ‘탈석유 정책’을 편 때문이다. 1973년 1차 오일 쇼크 때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차 운행은 물론 집 난방까지 어렵게 되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에너지 수급을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다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정책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현지에서 만난 덴마크 에너지담당 공기업 간부의 말이었다.

우리나라도 덴마크처럼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지만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 수십년째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다. 후발 주자로 경제성장을 하려면 값이 싼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논리가 앞섰다. 국제 유가에 따라 출렁이긴 하지만 국가별로 보면 1L당 휘발유값이 중간 정도 된다. ‘중산층의 꿈’으로 불렸던 1가구 1차량 시대가 된 지 오래다. 

황정미 논설위원
그런데 최근 미세먼지가 국민들의 일상을 흔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정한 미세먼지 농도의 ‘나쁨’ 주의보가 잦자 거리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늘었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미세먼지로 뿌연 도시를 볼 때나 국민께서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미세먼지는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미세먼지는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 연소나 자동차 매연 등 배출가스에서 나온다. 미세먼지 대책이 에너지 정책과 동전의 양면인 이유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30∼40% 되고 나머지는 도로를 달리는 차량, 발전소·공장 굴뚝, 공사장 등에서 발생한다. 중국만 손가락질할 형편이 아니다. 정부는 대통령의 독촉에 3일 미세먼지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된 경유차 제작·운행 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폐기·대체건설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앞으로 경유차 비율을 줄여나가고 ‘전력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후 석탄발전소 폐기 등을 추진한다는 게 ‘특단 대책’이 될 수는 없다.

폴크스바겐 스캔들에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프랑스다. 디젤차 비중이 80%나 된다. ‘클린 디젤’이 ‘더티 디젤’로 드러나자 정부는 디젤차 퇴출 작전에 나섰다. 파리시는 미세먼지 수치가 치솟았던 2014년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2020년까지 모든 디젤 차량의 파리 진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파리보다 2.1배 높았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 유로6(유럽환경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유차는 몇 년 내 도심이나 고속도로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환경부도 경유차 운행을 줄이기 위해 경유값 인상을 추진하긴 했다. 하지만 세금 인상에 부정적인 기획재정부가 제동을 걸더니 당정협의에서 아예 없던 일이 됐다. 새누리당 측이 “경유값 인상이나 고깃집 규제와 같이 서민 부담을 늘리거나 국민 생활에 불편을 드리는 방안을 포함시키지 말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한마디로 ‘표 떨어질’ 정책은 꺼내지도 말라는 얘기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부는 미세먼지 주범이 경유차 디젤 엔진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 어떤 게 맞는지 나도 헷갈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국 자동차 산업을 붕괴시킨다는 반대에도 디젤차 규제에 나선 프랑스, 독일 정부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 대기환경 지수가 조사대상 38개국 가운데 꼴찌이고, 앞으로 40여년 후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를 흘려 버린 탓이다. 혁신적인 정책이 없는데 혁신적 기술, 시장이 생길 리 없다. 폴크스바겐 사태에도 경유차를 찾는 소비자를 탓할 게 아니라, 그런 소비를 막을 정책을 만들지 못한 정부를 탓해야 한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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