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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구의역 ‘진짜 살인범’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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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16 22:13:02 수정 : 2016-06-16 22: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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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범죄 엄벌만으로는
완전히 뿌리 뽑기 어려워
관피아 유착구조가 악의 근원
부패의 먹이사슬 끊어내야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비정규직 청년이 숨지자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그러나 정작 사고의 진앙인 서울메트로 직원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메트로의 한 중견간부는 기술본부장이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분은 참 괜찮은 사람이야. 안 됐어.”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정도의 지위에 오르자면 능력과 인품이 분명 괜찮은 사람이었으리라.

사람들은 어떤 범죄나 물의를 일으키면 그 사람에게서 악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그것과 정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흉악범도 얼굴이 곱상하게 생기거나 우리의 평범한 이웃인 경우가 많다. 반인륜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대학살을 기획하고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뒤 “악마의 얼굴이 저토록 평범한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하고 매우 성실한 공직자였다. 서류 정리는 늘 깔끔했고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아이히만은 악하지도 유대인들을 증오하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나치 이념을 전파한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역시 여섯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끔찍한 범죄를 불렀단 말인가.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아무 비판 없이 명령에 순응하는 삶이 바로 죄인 셈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을 살인도구로 만드는 조직이나 비리 구조이다. 히틀러에서, 구의역에서 똑같이 발견된 것이 이런 살인적 구조였다.

알다시피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 은성PSD에는 비정규직 청년을 사지로 내모는 유착구조가 존재했다. 스크린도어 수리를 맡은 은성PSD는 메트로 퇴직자들이 만든 회사였다. 이들 낙하산 부대원은 스크린도어를 정비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책상에 앉아 회전의자를 돌리면서도 숨진 청년보다 3배나 많은 급여를 받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순전히 비정규직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2인1조의 근무수칙은 애초부터 지켜질 수 없었다. 그런 먹이사슬 구조가 안전 사각지대를 잉태하고 결국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다. 사고가 터지면 그 책임을 물을 대상자 찾기에만 바쁘다. 일단 단두대에 올릴 사람이 정해지면 그를 악마로 덧씌운다. 구의역 사고에서도 이런 통과의례가 어김없이 반복됐다. 서울시장이 고개를 숙이고 관련자들을 경질하는 문책인사가 단행됐다. 경찰도 은성PSD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수사에 나섰다.

범법자에게 책임을 묻고 엄벌하는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요식행위만으로는 부패의 뿌리를 잘라낼 수 없다. 우리가 범죄자로 낙인찍은 그는 진짜 살인범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조직화된 유착구조가 부패의 온상이라면 한두 사람을 엄벌한다고 해서 비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본질은 그냥 둔 채 사람만 바꾼다면 고름 위에다 고약을 바르는 격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19세 청년이 죽은 지도 벌써 20일이 흘렀다. 비극의 세월호 사고가 터진 지는 793일이 지났다. 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과연 악의 뿌리가 뽑혔는가. 구의역 사고에서 등장한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에서 보듯 관피아·정피아의 유착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상위 기관이 하청업체를 장악해 일감을 몰아주고 이익을 나눠 먹는 공생구조는 곳곳에 거미줄처럼 존재한다. 우리가 진짜 분노해야 할 곳은 탐욕에서 비롯된 끈끈한 유착구조다. 이런 적폐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애도하는 반짝 관심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땜질 처방 같은 일회성 주사는 오히려 면역력만 키울 뿐이다.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병증을 철저히 진단해 환부를 확실히 도려내는 일이다.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긴다면 살인마는 또 활개를 칠 것이다. 우리 일상에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말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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