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한유미가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의 현대건설 배구단 연습체육관에서 ‘코트 위의 패션모델’이라는 별명답게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유미는 은퇴 후 소속팀에서 코치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원 기자 |
만나자마자 은퇴 생각을 접게 된 과정을 물었다. 한유미는 “지난달 26일 우승 포상으로 하와이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계약서에 사인했다. 양철호 감독님이 ‘네 역할이 크다. 네가 1년 더 해줘야 지금의 팀 분위기가 자리 잡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더라. 구단 사장님에게도 메시지가 오더라. 팀이 나를 꼭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주변 지인들의 조언도 반반이었다. GS칼텍스에서 뛰고 있는 친동생 한송이는 “언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돈은 내가 줄게”라고 했다고 한다.
한유미는 “2010년 현대건설을 떠났던 것도 돌아가신 황현주 감독님이 후배들에게 에이스 자리를 양보하고 받쳐주는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해서였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지난 3월21일 눈물이 많이 났던 것도 그때서야 비로소 황 감독님의 깊은 뜻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우승에는 한유미의 조연 역할이 컸다. 주전들이 부진할 때면 레프트, 라이트를 가리지 않고 들어갔고 포스트시즌엔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그야말로 주연에 얽매이지 않고 조연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간 한유미의 이미지는 ‘까칠한 센 언니’였다. 그러나 현대건설로 복귀한 이후엔 짐꾼 노릇도 하며 ‘편한 맏언니’가 됐다. 그녀가 막내 선수들과 나란히 장비들을 들고 나르는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한유미는 “내가 막내였던 시절엔 규율이 너무 셌다. 하나부터 열까지 언니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맏언니가 되면 그런 부분들을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막내 시절 팀의 선배 언니들이 안 좋게 팀을 나가는 걸 보며 ‘난 박수 받으며 팀을 나가야지’라고 생각했다. 10살 차이가 넘게 나는 후배들과도 편하게 얘기한다. EXO나 이런 아이돌들을 후배들 덕분에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역 생활을 연장했지만 앞으로 한유미가 배구를 해온 날보다 할 날이 더 짧다. 한유미는 “선수생활을 하루 24시간으로 비유하면 난 23시쯤 와 있다. 이제 현역 이후를 준비할 때다. 리우 올림픽 세계예선전 객원해설을 맡은 것은 그 준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한유미는 최근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체육교육과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서다. 한유미는 “현역 은퇴를 하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지도자가 됐을 때 후배들에게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 프로배구에 여자 코치는 전혀 없다. 코치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역할뿐만 아니라 공을 직접 때려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역할이 힘든 여자 코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유미는 “외국을 보면 코치들이 공을 때려주는 게 아니라 선수들끼리 주고받는다. 선수들과 함께 생활을 해본 여자 코치의 메리트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구단들이 고정관념을 깼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친정팀인 현대건설에서 코치직을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유미에게 마지막이 될 2016~17시즌의 목표는 뭘까. 그는 “당연히 팀의 2연패다. 이번에 하와이 우승 여행을 가보니 정말 좋더라. 다시 한 번 후배들과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그게 맏언니인 내가 할 일이다”며 각오를 다졌다.
용인=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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