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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국민에겐 ‘머나먼 당신’ 황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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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1 21:57:04 수정 : 2016-06-21 21: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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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치기론 분열의 확산 못 막아
갈등 현장에 뛰어드는 투혼 보여야
박근혜 대통령은 싫은 사람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최근에 회자된 인물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회의에서 이 장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외면했다고 한다. 마음에 안 차는 사람은 ‘레이저’ 시선으로 쳐다본다. 레이저를 맞은 사람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다. 박 대통령이 최 장관을 응시하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인사 하마평에 올랐다. 곧 경질될 것이며, 친박계 총선 낙선·낙천자들이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소문은 청와대에서 남태령을 넘어 과천청사로, 고속도로를 타고 세종청사로 한달음에 번졌다.

장관들이 청와대 회의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열심히 메모만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최고지도자의 캐릭터가 그러니, 일국의 장관으로서 그에 맞추는 게 도리일 수 있다. 더구나 인내심을 발휘하면 반대급부가 생긴다. 장관은 맡은 분야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정책을 추진하는 힘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장관들은 정책으로 세상에 기여하거나 세상을 바꾼다는, 자기만족 같은 것이 있어 최고권력자가 주는 스트레스를 버텨낼 수 있다고 한다.

백영철 편집인
국무총리도 그럴까. 그럴 수가 없다. 국무총리실은 정책을 추진하거나 집행하는 부처가 아니다. 따라서 총리는 장관들처럼 정책추진으로 자기만족을 할 수가 없다.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행정 각부를 통할하라”고 지시한다. 조정과 조율이 책무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뜻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헌법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가.

국무총리실은 황 총리 취임 1년을 맞아 지난주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1년간 481차례에 걸쳐 각종 현장을 누볐다. 하루 1.3회꼴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많이 본 자료다. 통계수치의 나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무회의에 51차례 참석해 안건 2184건을 처리하고, 153건의 지시를 내렸다. 세종청사와 서울청사 간 영상회의 14차례, 국가정책조정회의 16차례, 50개의 총리 주재 위원회 108차례 개최, 법질서·안전관계 장관회의 3차례….”

구태의연하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가득 쌓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의전과 회의 참석, 기념사진 촬영행사 대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며 갈등을 최소화한 성과물이 쌓여 있어야 한다. 수치로 포장된 자화자찬과 생색내기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았다는 자기고백과 차이가 없는 셈이다.

사실이 그렇다. 미세먼지가 하루같이 하늘을 뒤덮자 박 대통령이 “가슴이 답답하다”며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외교안보도 아니고 국민건강과 관련된 환경이슈다. 대통령에 앞서 총리가 나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련부처에 지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적극적 역할의 의지가 황 총리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궁금증은 이어진다.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온 뒤에라도 총리가 중심을 잡고 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느냐는 것이다.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대책은 부처별로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왔다. 국민 사이에 ‘정부 음모론’이 인터넷 댓글판을 뒤덮었다. 혼선이 극에 달했지만 이마를 싸맨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국방부가 이공계 대체복무 폐지 방침을 내놓은 뒤 청년들이 분노하고 여러 부처에서 엇박자를 내도, 산업 구조조정을 두고 경남 거제와 울산 주민들이 아우성을 쳐도 국무총리실은 태평성대처럼 평화로웠고 황 총리는 유구무언이었다.

영남을 두 개로 분열시킨 영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다. 부산과 대구가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유치전을 벌인 게 우습게 됐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양측이 인지하고 있었다면 청맹과니처럼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대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지역 주민들이 원수처럼 으르렁댈 때 총리실은 뭐했는지, 총리는 현지 주민을 만나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게 된다. 정부가 그냥 두고 보는 사이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총리에겐 회의를 수백 차례 하는 것보다 갈등 해소를 위해 현장 속으로 뛰어드는 투혼이 더 중요하다.

황 총리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신공항과 관련해 정부는 뭐하냐 하고 말하지만, 틀린 일을 하려고 월급을 받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황 총리에게 ‘올바른’ 일은 뭔가. 황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갈등 현안에 대해선 절차가 있다. 신공항 문제도 용역 절차가 나오는 대로 조치를 밟도록 하겠다.”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제3의 결론을 미리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갈등민국’의 국무총리로서 안이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사후약방문 총리’는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총리는 사회적 대립을 줄이고 나라를 통합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분열하고 대립하는 현상은 일상이 됐다. 정부와 여당의 취약한 리더십 책임이 크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난장이 국민적 짜증을 부르는 상황에서 정부마저 사회적 갈등에 속수무책이어서 유감이다. 여당의 혼란상은 정권을 헌납하면 그만이지만, 정부 무능으로 나라가 사분오열되면 피해는 국가적인 문제가 된다. 황 총리가 여느 장관처럼 박 대통령의 레이저를 맞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이런 처세가 본인에겐 자랑이겠지만 국민엔 ‘민폐’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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