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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칼럼] 한국문학 세계화와 번역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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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6 21:18:43 수정 : 2016-06-26 21: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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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맨부커상’ 수상 이후
번역의 중요성 크게 부각돼
원작 문체 우수성 간과 안돼
한국 노벨문학상 너무 집착
독서풍토 살아나야 효과적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 부커상을 수상함과 더불어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있어서 번역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작가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훌륭한 번역은 절대적이며 필수적이다. 데버러 스미스의 영어 번역이 현지 영국인들에게 유려하게 읽히는 문체로 번역됐다는 것은 심사소감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특히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불과 6년 내외의 시간에 그런 한국어 실력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은 원작의 문체가 지닌 우수성이다. ‘채식주의자’의 문장은 짧고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이다. 절제와 함축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는 수많은 첨삭과 수정을 가했을 것이다. 더구나 토속어나 복잡한 문장이 배제돼 있다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번역자가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기 좋은 문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함축적 문장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스미스가 모국의 독자에게 읽히기 쉬운 문장으로 원작의 일부를 가감했을 수는 있다. 또 현지인들에게 통용되지 않는 용어나 어법을 영국적으로 변용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일단 한국어로 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할 경우 영어권의 문화나 전통을 고려해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미국에서 ‘채식주의자’를 원문 그대로 직역한 책이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번역이 독자들에게 스미스의 번역만큼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는 않다. 스미스 자신의 경우도 고지식한 첫 번역은 출판사에서 거절됐고 다시 자신의 독자적인 문체로 수정 보완한 원고는 출판사가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단순히 한 문장 한 문장의 번역은 오히려 원작의 매력이나 독서의 즐거움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문체와 관련해 두 가지 사례를 들고 싶다. 하나는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나오는 창작 체험이야기이다. 무라카미는 처음 소설을 쓸 때 모국어인 일본어로 쓰지 않고 영어로 초고를 쓴다고 한다. 서툰 영어로 작품을 쓰게 되니 당연히 문장은 짧아지고 군더더기는 없는 문장을 구사하게 된다고 한다. 영어로 쓴 초고를 다시 일본어로 고쳐서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무라카미의 고백은 그가 세계적인 보편성과 객관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의 문체이다. 그의 문체가 일반적으로 다른 여타의 프랑스 작가에 비해 단순명료하다고 한다. 프랑스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표준적 문장이라고 할 만큼 명료한 문체로 그의 소설들을 썼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출생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도 하겠지만 그러한 문체가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작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최근 입국한 스미스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상은 그저 상이고, 작가가 위대한 작품을 써서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음미한다면 작가에게 그보다 더 좋은 보상이 있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뼈아픈 발언이다.

작품은 제대로 읽지 않고 노벨상에만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지나친 목적지향성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독서가 살아나지 않는 지적 풍토에서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이 국민 정서 함양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벨상에 목매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거나 중간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노고와 우여곡절을 배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한국인들이 그에게는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고 싶은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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