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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개미와 베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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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7 22:37:53 수정 : 2016-06-27 22: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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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영국 개미’의 반란
개미는 살아남고
베짱이는 죽는다
‘개미가 되기 위한 개혁’
닻 올려야 한다
21년 전의 일이다. 1995년 10월 영국 윈야드. 삼성은 그곳에 유럽 전진기지 역할을 할 공장을 세웠다. 땅 넓이만 30만평이었다. 준공식 날 보기 드문 장면이 벌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나타났다. 녹색 코트를 입은 여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자존심이다. 여왕은 왜 그 자리에 간 걸까.

시침을 그로부터 3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2년 9월16일, 영국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날이다. ‘검은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국 파운드화를 대상으로 환투기 공격에 나선 조지 소로스는 하루 전 1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파운드화는 대폭락한다”는 바람 잡는 소리도 어김없이 했다. 그의 행태는 지금도 똑같다. 부도덕한 투기꾼의 공격을 받은 영란은행은 두 손을 들어야 했다.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 영국은 어떻게 변했을까. 만신창이가 됐다. 국민은 가난해졌다. 

강호원 논설위원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윈야드로 달려가 동방의 작은 나라 손님에게 고마움을 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파격 대우를 했다. 땅을 시세의 10%인 평당 5000원에 거저 주다시피 했다. 투자액의 30%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여왕의 모습과 파격적인 조건에서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는 영국의 몸부림을 보게 된다.

시침을 다시 15년 전으로 돌려보자. 마거릿 대처 총리. 노조천국 영국병을 뜯어고치기에 나섰다. 노조는 저항했다. 석탄노조는 1984년 363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파업에 나선 세력이 석탄노조뿐이었을까. 하지만 베짱이를 개미로 바꾸려는 대처 총리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1980년 고용법 제정 이후 9년간 이어진 노동개혁. 영국은 바뀌었다. 고용의 유연성에서 지금은 미국 다음이라고 한다. 쇠보다 꼿꼿했던 대처 총리.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영국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영국에 간 시진핑 중국 주석은 칙사 대접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중국을 끌어들여 런던금융시장의 세를 불리기 위해서다. 런던주식시장이 뉴욕을 누른 것은 굴러떨어진 감이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하나의 유럽’이 되기를 거부했으니 유럽 대륙 쪽의 배신감은 오죽할까. 유럽 국가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 EU 집행위원장과 EU 창설 6개국 외무장관은 “빨리 나가라”고 했다.

영국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이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원망을 왜 우리에게 돌리는가.” “개미처럼 일해 베짱이를 도와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313만명의 EU 국적자들. 왜 그곳으로 갔을까. 영국이 내는 EU 분담금은 한 해 평균 127억파운드(약 20조원). 56억파운드를 돌려받지만 나머지 상당액은 재정부실 국가를 돕는 데 쓰인다. 재정이 파탄 나도 연금개혁과 복지 축소에 한사코 반대한 그리스. 그런 나라는 그리스뿐일까. 남유럽 재정위기국도 오십보백보 아닐까.

“개미는 개미의 길을 가고, 베짱이는 베짱이의 길을 가라.” 이것이 브렉시트에 담긴 영국인의 생각 아닐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그들의 역사에서 가슴에 담은 생각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럽 현대사를 쓴다면 시대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브렉시트 전과 후로 나누어야 할 듯하다.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후로 나누는 것처럼. 영국의 EU 탈퇴는 모든 것을 뒤바꾸고 있다.

‘브렉시트 후’의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하나의 유럽’은 흔들린다. 개미는 베짱이와 함께하기를 싫어한다. 국제공조? 약해지지 않겠는가. 공조의 틀이 흔들리니 세계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여지가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소로스 같은 투기꾼이 나댈 것도 불 보듯 빤하다. 금융위기는 다발할 가능성이 크다. 너나없이 가난해진 상황에서 보호주의도 거세진다. 환율전쟁 소리는 벌써 터져나온다. 약육강식의 싸움은 새로운 룰로 자리 잡을까.

도전과 응전. 영국의 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가 문명의 생성·발전·소멸 과정을 분석하며 쓴 말이다. 도전은 시작됐다. 소용돌이치는 세계경제 자체가 도전이다. 얼마나 거셀까.

어찌 응전을 해야 하나. 영국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EU 탈퇴 결정을 뒤집어 보면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개미는 살아남고 베짱이는 죽는다. 우리는 개미인가, 베짱이인가. 개미가 되기 위한 개혁. 그것이 정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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