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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정부 외침에 왜 감동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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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30 21:09:43 수정 : 2016-06-30 21: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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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는 경제현안 설명하고
차관은 스마트폰만 만지작
나사 풀린 근무기강으로는
경제회생도 개혁도 성공 못해
우리 경제를 진두지휘하는 정부의 유일호 경제팀에 비장감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물론 당사자인 기획재정부는 펄쩍 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숨 가쁜 일정을 들먹인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당일에도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당연하고도 발 빠른 행보다. 그런데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없다.

의문은 며칠 뒤 유 부총리와 언론사 간 조찬 간담회에서 풀렸다. 기재부가 마련한 지난 27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설명회는 실망 그 자체였다. 중앙언론사 논설·해설위원들의 질문을 받은 유 부총리의 답변은 알맹이로 건질 게 없었다. 지난해 0.7%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내년 1.9%로 전망한 근거를 묻자 “우리가 예측해보니 그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맹탕 답변 수준이었다. 그들의 입맛에도 싱거웠던지 옆에 있던 차관보가 약간의 양념을 보탰다. 우리 경제의 주요 현안에 대한 경제 수장의 식견과 열정을 느끼기 어려운 자리였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설명회의 화룡점정은 배석한 기재부 제1차관이 찍었다. 부총리와 질의응답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주로 스마트폰과 어울렸다. 아예 대담하게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영상을 보거나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 횟수를 굳이 꼽자면 족히 30번은 넘었다.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팔짱을 끼기도 했다. 스무 명에 가까운 언론사 논설·해설위원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럴 거면 소중한 시간을 내서 왜 서울까지 왔냐”는 한탄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공직자의 예의를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차관의 일거수일투족을 들먹인 것은 그의 행동에서 공직자의 처신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제비로 봄이 왔음을 짐작하듯이 말이다. 정부가 그날 설명한 자료에는 추가경정예산의 규모와 산업개혁, 브렉시트 대응 방침 등이 담겨 있었다. 추락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과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게 될 조선·해운사 직원들에게 영향을 주는 대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에게는 그런 절박한 사안보다 손안의 스마트폰이 더 중했다.

생각해보라. 정부가 하반기 추경으로 제시한 10조원은 어떤 돈인가. 공무원들에게 한낱 숫자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10조원에는 수많은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땀방울이 스며 있다. 아마 생선 파는 김씨 아저씨와 과일 파는 이씨 아주머니의 외침도 녹아 있을 터이다. 공무원들이 꼬박꼬박 받는 월급에도 그런 외침과 땀방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국가 정책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라면 그 정도의 공감능력은 가져야 한다. 정책의 감동과 추동력은 거기서 나온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사회 조직의 변화를 속도에 비유한 적이 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이었다. 그보다 더 느린 것이 정부의 관료조직으로 25마일에 그쳤다. 정부 조직이 답답할 정도로 변화에 둔감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미국 공직자가 이 정도라면 우리 공직자의 속도는 과연 어디쯤일까. 낙지처럼 땅에 찰싹 붙어 눈만 굴리는 ‘낙지안동’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소리가 나오는 판국이라면 대답은 들으나 마나다.

고위 공직자가 공식 석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소일하던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글로벌 시장이 조기에 안정이 될 수 있도록 국제 공조도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 부총리도 “추경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국회의 신속한 처리를 재촉했다. 이제 보니 정부가 힘을 쏟을 곳은 국제사회나 정치권이 아닌 듯싶다. 바로 나사 풀린 공직 사회다. 화급한 경제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딴청을 부리는 마음자세로는 경제 회생도,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 시속 25마일은커녕 후진기어나 넣는 관료 조직으로는 튼실한 결실은 언감생심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은 사면초가나 진배없다. 난제의 극복을 위해선 많은 대책들이 필요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대책을 짜는 공직자들의 마음자세다. 낙지안동의 공직자로는 백약이 무효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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