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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우리 문화 자존심, 책거리·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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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5 22:27:00 수정 : 2016-07-05 22: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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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문자와 책그림 해외서도 호평
왕뿐 아니라 서민들까지 늘 책 읽기 즐겨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문자도(文字圖)와 책거리(冊巨里)를 주제로 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책그림을 우리말로 ‘책거리’라 불렀는데, 책거리에는 책은 물론 각종 문방구와 도자기, 과일 등도 함께 그려 넣었다. 조선후기 책거리는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확산됐다. 이것은 책거리가 민화 형태로 많이 나타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만큼 책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에 퍼졌음을 의미한다.

책과 함께 서가의 모습을 담은 책가도(冊架圖)도 유행했는데, 정조는 왕의 자리 뒤에 일월오봉도 병풍을 두는 대신에 책가도 병풍을 세우게도 했다. 책가도는 정조가 학문으로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려했던 그림이었지만, 양반사회에서는 고급의 수집 취미로, 민가에서는 배움의 열망과 출세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발전해 나갔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나 정선의 ‘독서여가’ 같은 그림에서도 책을 생활화했던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문자도는 ‘수(壽·)복(福)·강녕(康寧)·부귀(富貴)·다남(多男)’ 등 보편적인 바람이나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유교적인 덕목을 의미하는 문자 및 잉어, 부채, 새우, 새 등 고사(故事)를 상징하는 동물이나 사물을 함께 그린 그림을 지칭한다. 문자도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어린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녔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자도와 책거리는 문자와 책으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한국 문화의 독자성이 잘 나타난다. 보기에도 매우 독특한 문자도와 책거리는 오래전부터 외국에서는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많이 잊혀져 왔다. 문자도는 유교적인 덕목을 전파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책가도는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지만, 배움을 향한 열망은 조선후기 책거리 그림이 집집마다 내걸린 것으로 표현됐다. 독서 열기와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거리 문화의 유행은 지식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조선후기 책과 지식문화 보급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정조였다. 정조는 즉위 직후 창덕궁에 학문 연구이자 도서 수집 기관인 규장각을 건립했다. 그리고 재위 기간 동안 왕이 직접 편찬을 주관한 어정서(御定書) 2400여권과 이덕무, 박제가 등 규장각 검서관 출신 학자들이 왕명으로 편찬한 명찬서(命撰書) 1500여권을 합해 총 153종 39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출판했다. 왕이 책을 가까이하고 보급에 적극 나서자 이러한 문화가 신하는 물론이고 일반 백성에게까지 확산돼 나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자리짜기’에는 베를 짜는 부모의 뒤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고전소설 ‘흥부전’에는 흥부가 탄 박 속에서 ‘논어’를 비롯해 ‘사략’, ‘동몽선습’, ‘맹자’ 등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책을 통해 공부하여 신분을 상승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욕망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 문자도와 책거리 전시는 지난 6월 11일 시작돼 8월 28일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이들 그림을 통해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책을 늘 곁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전통을 확인하고 그 저력을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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