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완규칼럼]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관련이슈 박완규 칼럼

입력 : 2016-07-05 22:43:51 수정 : 2016-07-06 02:36: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미국 트럼프 현상 맞물리면
중우정치 타락 확산 우려 커
민주주의는 심의 절차라는 말
새기면서 상상력·지혜 모아야
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인 통치 형태이자 기본적인 정치적 가치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등하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으며, 공공의 일에 주체로서의 발언권을 지닌다고 여긴다. 정치에 관한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지만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당연히 실행해야 할 원칙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지만, 30년 전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숱한 시련을 겪은 세대에겐 민주주의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절실한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고향인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전사자 추도 연설에서 “우리의 정치체제의 운영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 이뤄지며, 그렇기 때문에 민주정으로 불린다”고 했다.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아테네인들은 공적인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거나 적어도 그 문제들에 대한 건전한 이해에 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박완규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체를 분류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이익을 지향하면 ‘폴리테이아’이고, 파당적 이익만 따지면 ‘데모크라티아’라고 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폴리테이아가 민주정이고 데모크라티아는 중우(衆愚)정치다. 민주정치의 타락한 형태가 중우정치인 것이다. 예전엔 고루한 분석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국내외 정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가슴에 와닿는다.

중우정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정치인 동시에 민중을 어리석게 만드는 정치, 선동정치가(데마고그)들의 기만과 책략에 놀아나는 정치다. 사람들이 감언이설에 쉽게 속는 탓에 중우정치가 생긴다. 근대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다수를 속이는 일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속이는 일보다 더 쉽다”고 한 말은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중우정치는 포퓰리즘과 직결된다. 대중의 인기만 추구하면서 이에 영합하는 정치를 하면 결과적으로 중우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원조인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했다. 많은 영국인들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며 후회하는 것을 보면 중우정치를 떠올리게 된다. 브렉시트를 지지한 정치인들은 영국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면서 브렉시트에 관한 왜곡된 정보를 흘렸다. 반대한 정치인들은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감을 부추기기만 했지 EU 회원국의 혜택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런 정치권의 저급한 책략이 정치 불신을 키운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직접민주주의 방식인 국민투표가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국민투표는 대의원들의 결정보다 더 민주적이지만, 더 나은 결정방식이 아닐 수 있음을 이번에 확인했다.

미국에서 고립주의를 내세운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포퓰리즘 유세와 맞물리면 파장이 커진다. 영국·미국 외에도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유럽 각국 등 많은 나라에서 중우정치나 포퓰리즘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사회 곳곳에서 지난 수십년간의 세계화 과정에서 발을 빼고 고립주의로 향하려 한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국제 현안을 둘러싼 이견을 조정할 만한 국제질서 주도세력이 사라지고, 국제관계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각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닐지 모른다. 내년 대선이 분기점이 될 것이다. 대선이 본격화하면 유력 후보들은 포퓰리즘 정치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다. 정치인과 전문가, 국민이 상상력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영국 정치철학자 애덤 스위프트는 ‘정치의 생각’에서 “민주주의는 심의를 위한 절차다. 토론과 반성, 그리고 논쟁을 통해서 시민들이 원래 갖고 있었던 잘못되고 이기적인 견해들은 더 나은 견해로, 다시 말해 ‘옳은 답’에 더 가까운 판단으로 바뀐다”고 했다.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정치적 오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