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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의 깃털과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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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8 21:32:34 수정 : 2016-07-08 21: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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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조차 삶의 척도가 아니다
별이 가득한 밤 그림자처럼
부양하고 달려가고…
하이데거가 인용했듯
시적으로도 거주해보자
한국문학이 살아난다고 한다. 지난해 표절사태로 등을 돌렸던 독자가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서브 역할을 했고 정유정, 권여선, 윤대녕, 황석영, 윤성희, 편혜영, 은희경 등 굵직한 소설가들의 탄력적인 리시브가 이어졌다. 훈풍은 시문학에도 불고 있다. 아우라를 잃어가는 우리 시의 정원에 두 권의 시집이 푸른 칠월처럼 걸어 들어왔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시였고/ 시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나의 생존 증명서는’)고 토로하는 최승자의 ‘빈 배처럼 텅 비어’가 오른편에, “등갈비 잰답시고 장에 간 엄마가/ 나를 깨우는데/ 시고 나발이고 일단 양파나 좀 까라고”(‘시는 재는 열두 시간’) 너스레 떠는 김민정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 왼편에 있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최승자는 시를 살고, 김민정은 시를 논다. ‘시란 원래 이런 것이었지’와 ‘시란 이래도 되는 것이었어’ 사이를 오가며 시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 시대에 시는 무엇이고 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양극단의 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짧고 비어 있고 여운이 깊은 반면, 후자는 길고 가득 차고 발랄 통쾌하다. 전자에서 먹먹하게 가슴 저며 하다가, 후자에서 킥킥거리며 가슴 환해한다. 그러나 두 시집 모두 맨몸의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일갈했던 이는 황지우였다. 김민정도 알고 있다. 배를 채워 주지도 몸속 갈증을 해갈해 주지도 못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비어 있음으로 정신의 배를 채워 주고 영혼의 갈증을 채워 주는 게 시라는 걸. 시란 쓸모없기에 우리를 억압하지 않고 그 쓸모없음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그는 수다와 너스레와 막말의 역설(逆說)로 역설(力說)한다. ‘쓸모없음’을 아름다움으로 전화시키고자 한다. 시집 제목을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라 내세운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 이 유명한 문장은 하이데거가 ‘시적 거주’라는 개념을 피력하면서 인용한 훨덜린의 시 구절인데, 자주 ‘이 땅 위에’라는 부사구가 생략되곤 한다. 훨덜린에 따르면, 신성조차도 이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척도가 되지 못하기에 인간은 단지 ‘별들이 가득한 밤의 그림자’처럼 시적으로 거주할 뿐이다.

1980년대든 2010년대든 최승자의 시는 ‘이 시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한없이 가볍고 간결해진 이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마리의 부운몽’처럼 떠돌면서도 그는 이 땅 위에 시적으로 거주한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한다, “우연인 양 그냥 가라/ 하늘은 넓고 깊다”(‘우연인 양’).

“당신은 닭띠이고 나는 용띠라며 알은척을 했다/ 입 좀 풀자고 한 얘기했는데 그녀가 쌩을 깠다”(김민정, ‘시집 세계의 파편들’). 김민정은 76년 용띠고 최승자는 52년 용띠다. 이 두 시집에서 시에 대한 같은 물음과 서로 다른 답을 읽었던 이유, 이 두 시집에서 혈연성을 느꼈던 이유를 나 또한 용띠라며 알은척을 한다. 개연성 없는 개그처럼 ‘들이대길’ 나는, 이 두 시인 사이에 있는 64년 용띠다. 용용 시겠다.

두 시집 모두 출간 일주일 만에 중쇄에 들어갔단다. 반가운 일이다. 시를 읽지 않으면 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든가, 시를 배우지 않았다면 벽을 보고 서 있는 사람처럼 됐을 것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들이대지 않겠다. “이런 시는 이런 데 좋고 저런 시는 저런 데 좋고/ 그냥 한 하늘이 걸려 있을 뿐/ 시 좋고 바람 하나니”(최승자, ‘이런 詩’), 이 두 시집을 통해 기도처럼 부양하는 시의 깃털과 넝쿨처럼 달려가는 시의 발바닥을 느껴 보자. 시라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장맛비도 받아보고, 시적으로도 거주해 보자, 이 땅 위에.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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