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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공기업 말아먹는 관피아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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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2 22:02:28 수정 : 2016-07-12 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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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마나한 관피아 방지법
늑대소굴 되기 전에 뿌리 뽑아야
제보를 받고 확인하면서 “이럴 수가”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취재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최근 중앙부처의 모 운영과장이 공기업 사장 임원추천위원회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를 3순위 안에 포함시켜 올려 주세요. 그다음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A씨는 전화를 건 과장의 선배로 그 부처에서 요직을 거치다 6년 전 퇴직했다. A씨는 이후 모 공기업 사장에 취임, 2014년까지 3년을 재직했다. 그 공기업의 사장 연봉은 1억2000만원. 성과급을 보태면 2억원이 넘는다. 60대의 A씨는 한 차례 낙하산 사장도 부족한지 이번에 두 번째로 또다른 공기업 사장에 응모했고, 후배 관료가 두 번째 낙하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임원추천위의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어떤 위원은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임추위는 과장 요구대로 움직였다. 부처 인사담당 과장은 산하 공기업의 절대갑이다. A씨는 3위로 턱걸이했다. 그것도 최종 점수에서 4위와 1점차로 통과했다. 3명 중 3위이니 꼴찌다. 그래서 정부와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탈락될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순진한 생각이다. 

백영철 편집인
관피아 무리가 꼴찌를 선두로 바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세 명의 사장 후보 추천 명단은 임원추천위가 매긴 성적 대신 가나다 순으로 정부에 송부된다. 여기서부터 관피아들의 마술쇼가 벌어진다.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가 A씨를 포함해 두 명 정도로 추려주면, 공기업 임추위에 전화를 건 부처 과장이 A씨에게 유리한 평가서를 붙여 소속 장관의 결재를 받는다. 청와대에 추천 서류가 넘어갈 때는 놀부가 흥부로 바뀐 뒤다. 감쪽같다.

2년여 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 공기업 혁신 목소리가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로 국민에게 약속한 게 ‘관피아 척결’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관피아 방지법’이다. 공무원은 퇴직 이후 3년간 업무 관련 기관에 재취업을 할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해놓았다. 대통령이 나선 만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관피아의 폐해는 막아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 역시 순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님 동생 관계로 뭉친 관피아 무리가 우회로를 뚫어 잠금장치를 푼 것이다. 부처에서 퇴직한 뒤 3∼4년 정도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 준정부기관이나 정부 출연기관에서 좋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공기업 사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자신도 폼 나는 관피아가 되고 싶은 후배 공무원의 협조만 있으면 아무 어려움이 없다. 관피아 방지법은 있으나 마나다. 사례가 수두룩하다. 올 들어 관피아가 낙하산을 타고 사장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공기업이 해당된다.

며칠 전 취임한 한국지역난방공사 김경원 사장은 지식경제부에서 2012년 퇴직하면서 산하기관인 전자부품연구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3년을 보낸 뒤 다시 난방공사 사장에 지원해 청와대 낙점을 받았다. 김 사장이 거친 전자부품연구원 원장 자리는 같은 부처 후배가 이어받았다. 이 후배도 나중에 또 다른 후배에게 연구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난방공사 사장에 응모할 것이다. 5월에 취임한 코레일 홍순만 사장은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을 마친 뒤 2011년부터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원장으로 3년을 지냈다. 3월에 취임한 한국토지주택공사 박상우 사장은 3년 전 국토교통부 실장 자리를 그만둔 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으로 재직했다. 2월에 취임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도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에서 옷을 벗은 뒤 2014년까지 교통안전공단이사장 자리 임기 3년을 꽉 채웠다.

이처럼 국민의 눈을 속이며 낙하산을 두 번씩이나 메는 사례가 공교롭게도 박근혜정부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혁신은커녕 관피아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사실을, 공직사회가 국민보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더욱 안하무인이 되고 있는 실상을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집권 후 첫 내각에서 관료를 10명이나 기용했다. 그 이후 인사에서도 공무원 사랑은 이어졌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관피아 무리의 공공연한 횡포다. 법률과 절차를 뻔뻔하게 무시하며 자기네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고 있다. 공무원을 향한 박 대통령의 애정은 관피아 무리에 의해 배신당했다.

국민을 ‘개돼지’ 정도로 여기는 고위 공무원이 있는 것을 보면 관료들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 눈에 장관들은 ‘손님’일 뿐이다. 관료들은 투서나 고자질, 지연과 혼란, 복지부동 등 온갖 방법으로 장관을 어르고 달래며 관피아의 영토를 확장한다. 장관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송곳니를 드러내는 늑대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면 결국 관피아의 논리를 옹호하고 두둔하게 된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임명한 장관들은 결국 관료의 인질이 돼 자리보전에나 신경을 쓰기 십상이다.

더구나 정국은 여소야대다. 대통령은 임기말로 가고 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관피아들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절차와 법률을 자기들 입맛대로 뒤흔들며 공기업 인사를 농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카르텔이 조폭처럼 공고화될수록 대통령의 레임덕은 빨라질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에 눈 밝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관피아의 횡포와 정면대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관피아들의 조폭적 행태를 뿌리 뽑지 못하면 이 나라는 늑대들의 소굴이 되고 만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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