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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반쪽 납세와 공짜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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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2 22:10:56 수정 : 2016-07-12 22: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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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줬다 뺏느냐”
맞춤형 복지 논란
복지 수요 커지는데
국민 절반 소득세 0원
복지·세금 적정 수준
20대 국회서 합의해야
아버지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신 건 돌아가시기 1년 전쯤이다. 국민연금제가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20여년째 매달 유족연금을 받으신다. 해마다 산정기준이 달라지는데 월 30만원 안팎이다. 시골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는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니 가계에 퍽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버지가 생전에 납입한 연금액을 감안하면 적잖은 혜택을 받으시는 셈이다. 남들은 나중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지만 나는 아니다. 어머니의 연금만으로도 내 월급에서 다달이 떼는 국민연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받으시는 기초연금도 마찬가지다. 월급 명세서를 받아볼 때마다 솔직히 세금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머니가 받는 기초연금, 공짜 지하철 비용은 어디서 나오겠나. 세금이 없으면 그런 혜택도 없다. 다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얘기하면서 세금 문제라면 말이 달라진다.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건 싫고 각종 복지 혜택은 받아야겠다는 식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공짜 시리즈로 이런 심리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황정미 논설위원
요즘 인터넷 육아 카페는 맞춤형 보육 논란으로 시끄럽다. 정부는 이달부터 맞벌이 가구와 홑벌이 가구 자녀를 ‘종일반’ ‘맞춤반’으로 나눠 지원금을 차등화했다.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주부는 그들대로 불만이다. 워킹맘들은 예산 삭감을 핑계로 어린이집이 보육 질을 떨어뜨릴까 걱정이다. 전업주부들은 중간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불편함, 아이의 소외감을 호소한다. 양쪽 모두 “왜 줬다 뺏느냐”는 반감이 깔려 있다. 취업, 소득과 무관하게 보육지원을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혜택을 ‘뺏느냐’는 것이다. 한 워킹맘은 육아 사이트에 “내가 낸 세금으로 보육료 예산 삭감하지 말고 다른 예산 줄이라”고 썼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말처럼 복지는 일종의 ‘공동구매’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혼자 사는 것보다 ‘공구’하는 게 싸듯이 모두 얼마씩 돈을 내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소득이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돈(세금)을 내야겠지만 무임승차는 없다는 뜻이다. 나라가 무한정 빚을 내지 않는 한 복지 비용은 누구든 감당해야 한다. 일단 퍼주기식으로 가면 후유증은 남는다. 맞춤형 보육 논란이나 정부·지자체 간 누리과정 예산 싸움처럼 말이다.

정치권이 20대 국회에서 복지와 세금을 화두로 삼은 건 반갑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터무니없는 공짜 복지공약 경쟁은 피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복지의 구조 개혁을 언급하면서 “복지를 위해 세금을 어디에서 얼마나 더 거둬야 할지 국민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세제개편 관련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20대 국회가 책임을 지고 복지수준과 조세부담 수준을 다뤄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금 복지수준에 만족 못한다는 응답이 많다. 중(中)복지, 고(高)복지를 원한다면 중부담, 고부담도 감수하는 게 맞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제 틀을 손봐야 한다. 대기업, 부자 증세만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야권 논리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국세 기본인 소득세를 내는 국민이 절반인 ‘반쪽 납세’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지난해 근로소득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면세자 비중은 48%다. 자영업자 가운데 조세 특혜를 받는 간이과세자도 30∼40%에 달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자영업자와 형평성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자 면세점을 선거 때마다 높인 결과다.

여야 모두 ‘한국형 복지모델’을 얘기한다.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시한부라는 게 드러났다. 국민 절반가량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복지모델을 짜는 건 모래성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표를 의식해 소득세 감면에만 눈먼 정치권의 각성도 필요하지만 ‘납세의무’를 지는 국민도 이젠 솔직해져야 한다. 매번 남의 돈으로 ‘공짜 식사’를 할 수는 없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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