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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표절과 차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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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5 21:01:20 수정 : 2016-07-15 21: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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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달린 파격적 ‘모나리자’
마르셀 뒤샹의 반란은 신선
표절 논란 부른 국가브랜드 유감
겉모습만 다르게 만들지 말고
새로운 느낌?생각 담았더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복제화에 연필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밑에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Elle a chaud au cul)를 뜻하는 불어 발음의 글자 ‘L.H.O.O.Q’를 제목으로 써 넣었다. 동성애자라고 알려진 다 빈치를 조롱하는 것이고, 신비롭고 온화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엉덩이가 뜨겁고 가려워서 웃는 웃음이라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다.

이런 것도 예술일까. 지금까지 예술을 지탱해 온 이론이나 미학을 던져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반(反)예술운동인 다다이즘 작품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모나리자’ 이미지를 가져다 썼는데, 표절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덧붙였기 때문이 아니다. 불후의 명작으로 예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모나리자’라는 작품의 틀을 깨야 새롭고 창조적인 작품이 탄생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이런 방법을 미학에서는 표절과 구분해 차용이라고 한다. 참고문헌을 인용해서 자기 글을 쓰고 새로운 주장을 만들어내듯이 기존의 이미지를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와 주장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무엇을 물리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보다 어떻게 보이고 생각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창조적 사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뒤샹의 도발적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에서나 봄 직한 남자 소변기를 ‘샘’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전시회에 출품했다. 물론 전시에서 제외됐는데, 예술가의 표현 흔적이 전혀 없는 무성의한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뒤샹의 대답은 “세상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흥미롭게 생긴 물건이 넘쳐나는데, 굳이 어렵고 복잡한 것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새로 만들어 혼란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주변에 있는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해서 미술작품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창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물리적인 제작 행위보다 예술가의 결정과 창조적 사고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을 대하는 관습을 뒤엎는 뒤샹의 이런 행위가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에 크고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예로 대중문화 속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이미지나 물건을 끌어들여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낸 팝아트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것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고 보여주느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기 대신 흔한 폐타이어를 작품에 끌어들여 그 위에 색을 칠한 작가도 있고,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 같은 사물이나 일상적 주변 환경을 작품의 구성요소로 활용하는 작가도 있다. 모두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지만, 예술이 아니라든지 표절이라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고급예술의 허영에 찬 가식적 태도를 향해 비판적 메시지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느낌, 생각, 그리고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창조적 사고의 역할이다.

최근 국가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만든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가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프랑스에서 이미 사용한 ‘크리에이티브 프랑스’란 디자인과 색채 구성이나 글자 배열에서 유사하다는 점에서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한 국가가 독점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같은 단어이고 색깔이 유사하지만 디자인 폰트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표절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뒤샹 작품이 콧수염과 턱수염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은 아니었듯이, 기존의 것을 검토했다면 겉모습만 약간 다르게 만들지 말고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크리에이티브’란 단어도 흔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흔한 것으로 그들이 보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한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냈는가? 그게 아쉽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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