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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미국 대통령선거와 한국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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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01 21:20:42 수정 : 2016-08-01 21: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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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주인정신 실종
미국 대통령 누가 되든지
스스로 운명 개척 못하면
자주국가로 우뚝 설 수 없어
미국을 이끄는 궁극적인 힘은 무엇일까. 청교도정신, 바이블, 달러, 법 등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는 대법원장 앞에서 바이블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 대법원장은 법을 상징한다. 바이블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실은 법이 더 중요하다. 여러 인종과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합중국인 미국은 유럽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지만 법이 없으면 운영되지 못한다. 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국가가 종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조기에 대한 미국 국민의 존경이 각별하다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중세가 종교국가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국가종교의 시대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세계가 세계주의, 지구촌주의를 주장하다가 한발 물러섰다. 미국의 4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은 미국의 미래지향이 국가주의로의 회귀를 점치게 한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고, 이민을 부정하면 미국의 정신이 흔들릴 정도이지만 이민에 따른 인구와 직업, 부익부빈익빈의 문제, 그리고 테러리즘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현재도 세계의 인재들을 돈으로 사듯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노동이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미국 대선을 보면 세계는 지금 충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종교, 재화, 서비스 등에서. 이러한 충돌 중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도 눈물겹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지만 그동안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모양이다. 지금 미국은 트럼프라는 부동산 재벌, 거친 막말의 남자와 힐러리라는 전직 대통령 클린턴을 남편으로 둔 법률가, 노련한 정치행정전문가가 차기 대통령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최초의 남녀 후보의 경쟁이다. 최초의 여성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힐러리는 최초의 흑인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의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이다.

자본주의를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에서 재벌이 직접 대통령 후보가 된 적은 없다. 트럼프의 마인드는 국가를 기업으로 보는 마인드이다.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입장은 착잡하다. 트럼프는 한국의 주한미군 안보비 부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거론하면서 “협상에 응하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선 미군 철수도 검토한다”고 호언하고 있고, 힐러리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선 수정의사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공화당)는 북한을 ‘김씨 일가의 노예국가’로 정강정책을 택하고 있고, 힐러리(민주당)는 김정은을 ‘가학적 독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화제인 것을 보면 한국이 세계정치의 최전선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핵개발을 강행함으로써 미국과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는 북한과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동아시아 축으로 성장한 미국과 혈맹의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확실히 한국은 백척간두에 있다. 세계의 화약고가 되느냐, 세계평화를 주도하느냐, 양단간에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이 먼로주의라는 미국의 보호주의와 한국전쟁이 미국의 동아시아 방어라인 애치슨라인의 선언과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의 보호주의와 축소주의가 등장했을 때, 세계적 전쟁이 발발했음을 볼 수 있다. 미국이 다시 그 후퇴지점에 있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세계적인 ‘전쟁 혹은 평화의 사건’이 일어날 징조인지 모른다. 현대는 경제가 정치의 알맹이이고, 기업의 활동이 국가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하지만 세계정치가 순전히 기업적 마인드에서 운영될 수는 없다. 세계가 크게 위기를 맞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 징조는 세계정치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 등의 다른 나라와 인종에 대한 배려가 점점 실종되고 있다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질서의 개편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혜는 서로 경쟁하기는 하지만, 결국 상부상조하고 증여하면서 살아왔다. 있는 자(부자)는 항상 없는 자(가난한 자)에게 인정과 물품을 베풀고, 그 베푸는 것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지위를 얻고 지배력을 행사했다. 이것이 북미인디언 콰키우틀족의 ‘포트라치’라는 축제정치이다. 현대의 경제정치체제는 옛 축제체제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트럼프의 ‘노예국가’라는 말은 바른말이면서도 결코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김일성 왕조전체주의를 빗대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인에게 노예근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남한이 북한과 진정으로 다른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남북은 60∼70년 전만 해도 조선왕조체제와 일제의 유산을 공유한 한 민족이었다. 그 후 북한은 공산사회주의체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 갈라졌지만 그 유산은 오늘날도 집단심리와 문화적 유전자(DNA)로 작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이 정치·경제적 노예국가라면 남한은 혹시 문화적 사대·노예국가가 아닌가. 나라에 주인정신이 있었다면 국가지도층과 지식인들이 오늘날과 같은 부정부패 만연의 나라, 정의가 실종된 나라, 선악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禮)로 해야 할 것을 법(法)으로 하려고 하니 위선(僞善)이 되고, 법으로 해야 할 것을 인정으로 하니 부정(不正)이 판을 친다. 남북한을 통틀어 진정한 주인정신이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한다면 주인국가가 아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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