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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이혼 후, 전남편이 우리 집에서 자기 시작했다

입력 : 2016-08-04 14:21:04 수정 : 2016-08-04 2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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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맛있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아들, 딸은 아직 10대다. 설거지는 남편 몫이었다. 그는 열심히 그릇을 닦았고, 밥 먹은 자리도 깨끗이 치웠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바로 ‘애인’을 부르러 가는 것이었다.

혹시 잘못 본 것 아닐까 생각이 들겠지만 맞다. 그 사람은 애인을 부르러 갔다.

미국의 프리랜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이미 시튼은 ‘부모가 된다는 것’을 주제로 한 편의 글을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이혼하고도 전남편과 가깝게 지냈던 과거를 떠올린 내용이다.


우리는 4년 전 이혼했다. 남편은 올해 서른 살인 여자친구와 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도 있다. 나 역시 새로운 남편과 살고 있다. 앞서 함께 밥 먹었던 곳은 남편의 애인이 우리의 즐거운 저녁 식사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비운, 그들이 사는 집이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그 사람이 우리 집으로 왔다. 차로 다섯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렸다. 전남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 사람 없는 인생이 너무 슬펐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 전남편은 현관 앞에서만 기다렸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봤다. 저녁에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온 그 사람은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잔 뒤, 다음날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브런치를 먹였다.

아이들에게는 아마도 방학 느낌이었을 거다. 물론 그런 방학을 모든 아이들이 지내는 건 아니지만.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스틸컷



박물관 앞에서 어색하게 만나던 날이 기억난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출입구에 섰던 나는 발길을 돌리려 했는데, 그때 아들이 “가지 마요”라며 옷자락을 붙잡았다. 하지만 “안돼”라고 답했다. 아들은 “왜요?”라고 물었다. “엄마가 불편해서”라는 말이 혀끝에 닿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을 정당화할 수 없어서다. 결국 박물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음식을 앞에 놓고 억지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났지만 우리가 가족으로서 과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만 떠올리려 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따금 전남편은 우리 아들과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놀았다. 침낭에 몸을 맡기고 잠을 자거나, 노트북에 영화를 담아 함께 보기도 했다. 텐트 안에서 패스트푸드를 같이 먹는 것도 봤다. 그렇게 조금씩 그 사람이 아들과 가까워지면서 우리 둘 사이에도 예전의 친밀감이 조금씩 샘솟는 것 같았다.

사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웃긴다는 것 안다.

이런 적도 있다. 그 사람이 우리 집에 도착할 무렵, 현재 나와 함께 사는 남편도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악수했다. 주먹을 날리는 일은 없었다. 전남편이 집으로 돌아간 후, 남편에게 “그 사람 어땠어?”라고 물었다. “옷 괜찮게 입었던데?”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들은 나더러 “멋지다”라고 말했다. 이혼하고도 그렇게 쿨하게 전남편을 보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스틸컷


정상처럼 여겼던 이 같은 날의 궤도는 “이혼한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 안 돼요?”라고 딸이 물으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혼하고도 전남편과 사이좋게 지냈던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를 용서하고 가까워지려던 모습은 마치 그 사람과의 이혼이 정당한 일인 것처럼 아이들에게 말하는 꼴로 변해가고 있었다.

2년 전쯤 선언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우리 집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없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혼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로 결정했다.

전남편이 아들과 텐트를 쳤던 그곳에서 딸은 새로운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됐다.

테이블을 초로 장식하고,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집 안에서 창문 너머로 그들을 보노라니, 아이들에게 해줄 어떤 말보다도 현재 남편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 앞에 자식들의 소망을 놓음을 뜻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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