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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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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08 21:11:29 수정 : 2016-08-08 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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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의 쓴소리
잘못을 돌아볼 때
시대를 바꾸는 구도가 있고
고통받는 중생 구제도 있다
혜능은 글을 몰랐다. 당나라의 비구니 무진장이 물었다. “글을 모르면서 어찌 진리를 안다는 말입니까.” 혜능은 답했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오. 달을 보는데 손가락을 거칠 필요가 있겠소.” 선종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꿰뚫는 지월(指月)의 가르침이다.

혜능은 선종의 6조 대사다. 나무꾼이었다. 스물네 살 때 5조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다. 절 허드렛일을 한 지 8개월 만에 깨우침을 얻는다. 홍인은 그에게 가사(袈裟)를 물려줬다. 가사는 신표였다. 홍인은 “떠나라”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예로부터 법을 전하는 자의 목숨은 실낱 같다. 중생이 알면 반드시 너를 해칠 것이다.” 입으로는 구도를 말하며 몸으로는 세속의 이욕을 좇는 산문의 세태를 이르는 말일까. 가사를 빼앗기 위해 뒤를 쫓은 홍인의 제자들. 혜능은 15년 동안 사냥꾼 무리에 섞여 지냈다고 한다. 홍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사를 탐하는 자는 가사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
선종의 뿌리는 보리달마에 가 닿는다. 달마는 남천축의 바라문이었다. 천축은 인도다. 남북조시대 때 남월을 거쳐 중국에 갔다. 남쪽 광동·광서 인근을 통틀어 남월이라고 한다. 마르코 폴로의 바닷길을 통해 간 걸까. 남조의 양 무제는 달마를 만났다.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북위의 숭산 소림사로 간 달마. 9년 면벽좌선(面壁坐禪) 끝에 마침내 깨우친다. 돈오(頓悟)다. 달마를 이은 제자들은 정신세계를 바꿔놓는다. 홍인, 혜능도 그의 제자다. 1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마라습이 있다. 그는 인도 구자국 승려다. 5호16국시대 때 전진의 부견이 군사를 보내 강제로 보쌈을 해온 고승이다. 후진 요흥이 모셔 가면서 구마라습은 역사적인 족적을 남긴다.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당의 고승 현장은 구마라습으로부터 200년, 달마로부터 100년 뒤의 인물이다. 방대한 불경을 번역하고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걸출하다. 그런 인물은 어찌 나타났을까. 까무잡잡한 승려 구마라습과 달마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집을 벗고 진리를 갈구한 지식인들. 그것은 정신의 새 지평을 여는 힘이었다.

“한국 선불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던 자리는 기복 종교가 됐다.… 기복은 돈, 참 슬픈 일이다.” “한국 승려 문화는 고통을 함께하기보다 안락함을 누리고 게으르기까지 하다.” 파란 눈의 승려 현각 스님의 쓴소리에 불교계는 벌집 쑤셔 놓은 듯하다.

이런 반응이 나온다. “가슴이 먹먹하다.” “생채기 난 환부를 긁힌 것처럼 쓰리고 아프다.” 고개 숙인 선승들. 산문은 살아 있다.

다른 반응도 나왔다. “25년이나 살고도 우리 전통문화를 존중하지도 않고, 문화적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자기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씁쓸한 말이다. 잘못을 말하면 먼저 자신의 흠을 돌아보는 법이 아니던가.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이 굽었느냐고 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전통문화? 인습을 좇는 것이 전통일까. 그런 식이라면 혜능이 어찌 있으며, 구마라습과 달마는 어찌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쪽은 우리가 아닐까.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나. 우리나라에 오지 않는다. 다람살라로 간다. 우리 불교는 왜 영어로, 스페인어로 불법을 세계에 전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 전통문화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좁은 생각을 엿보게 된다. 기복과 돈. 그 굴레가 구마라습, 달마, 혜능으로 이어지는 구도 혁명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3년 전 가을 14명의 수좌스님은 조계사 뜰에서 아흐레 동안 묵언정진을 했다. 모두가 선방을 나서기 싫어하는 고승들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산문을 나섰을까. 조계종 총무원장 연임 반대? 아닐 게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에 곡기를 끊고 묵언정진한 것이 아닐까.

선방을 지키는 많은 선승은 걱정을 한다. 쇠락하는 불교를, 자비심을 잃어 가는 우리 사회를. 넉넉한 마음으로 잘못을 돌아볼 수는 없을까. 그래야 우리 사회도 넉넉해지지 않겠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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