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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여당의 자격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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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5 22:01:36 수정 : 2016-08-16 00: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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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는 서쪽 하늘 물들여도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순 없어
화재경보기 오래전 울렸으나
새누리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비서 출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한번 비서는 영원한 비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 당선 이틀 뒤 청와대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보여준 언행이 딱 그랬다. 박 대통령의 ‘당·정·청 하나’ 선창에 “우리 대통령님이 이끄는 이 정부가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당·정·청이 완전히 하나, 일체가 되고 동지가 돼서…” 하는 복창은 배운다고, 마음먹는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충복(忠僕)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 대통령이다. 남들에게서 ‘박비어천가’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혼신의 힘을 다해 모시고 싶은 충심을 표현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에게 맞서는 게 정의라 인식한다면 여당 소속 의원으로 자격이 없다”는 발언은 되뇔수록 목에 걸린다. 대통령 면전에서 자신의 이마에 ‘진실한 사람’ 낙인을 찍은 엄숙한 의식이었는지는 몰라도 여당 대표의 공식 데뷔전 모습치곤 뜨악하다. 대통령과 맞서지 말라는 것은 청와대 출장소, 청와대 거수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할 줄 모르면 당·정·청은 혼연일체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과 하나 되기는 어렵다. 이 대표는 여당 의원의 자격을 말하기 전에 여당의 자격부터 깊이 고민해야 한다.

김기홍 논설실장
4·13 총선이 넉달 지났다. 새누리 대참패, 16년 만의 여소야대, ‘3당시대’ 개막을 알린 선거혁명은 정치권에 한바탕 휘몰아칠 폭풍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태풍의 기세는 꺾였고, 태풍이 비껴간 정치권은 한여름 밤의 꿈을 꾼 듯 다시 제자리다. 의회 권력지형이 바뀌었고 야당이 다수가 됐다고는 하나 힘만 앞세워 밀어붙이기엔 그들의 밑천 또한 뻔한 처지다. 민의는 협력, 합의의 정치를 하라는 것이나 손뼉도 소리를 내려면 마주쳐야 한다. 문제는 손뼉 한쪽이 마주쳐 줄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은 국정을 책임진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매섭게 심판했으나 분노한 민심의 목소리가 그들에겐 마이동풍이었다. 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박근혜정부는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았고, 새누리당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앞으로 나아갈 때 국민의 삶도 편안해질 수 있고 나라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정부와 여당은 정작 ‘뭣이 중한지’ 모르고 있다. 국민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다. 그들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전기료 누진제 개편 문제에서 잘 드러났다. 42년 전 도입돼 일반 가정에만 과도한 요금을 물리는 누진제를 시대에 맞게 손질하랬더니 몇푼 찔끔 깎아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려 한다. 그들에게 국민은 시혜의 대상이다.

시대는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앞에서 기다리는 미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누군가 닦아놓은, 아는 길만 따라가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이다. 경제에선 추격이 아닌 선도, 문화에선 모방이 아닌 창조, 정치에선 통치가 아닌 협치의 시대를 열어가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이다. 불행하게도 새로운 세상을 맞는 일을 주도해야 할 정치는 준비가 안 됐고, 그런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앞장서야 할 여당은 능력이 안 된다.

서산에 지는 해는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일 수는 있어도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는 없다. 새누리당이 하려는 일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일에 얼마간의 붓질을 보태는 것이라면 친박을 중심으로 비박과는 벽을 쌓으면서 “당·정·청이 일체가 되고 동지가 돼서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책무를” 다하는 걸로 충분하다.

20대 총선을 포함해 지난 10년간 새누리당이 해온 잘못을 기록했다는 ‘국민백서’는 “당은 권력 가까이가 아닌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청와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아는 것은 힘이 아니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화재경보기가 오래전에 울렸지만 새누리당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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