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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중국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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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6 22:03:54 수정 : 2016-08-16 22: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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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죽은 뱀’으로 여기는가
사드 배치에 외교 결례 일삼아
관영매체는 치졸한 겁박 공세
향후 세계 이끌 G2 자격 있나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뒤 이듬해 3월 미국 뉴욕의 투자은행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유서 깊은 금융회사들의 간판이 내려지고 살아남은 곳도 사무실 곳곳이 텅 비어 을씨년스러울 때였다.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과 고속성장 덕분에 세계 경제가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중국 신좌파 이론가 왕후이(汪暉)도 저서 ‘탈정치 시대의 정치’에서 2008년을 주목했다. “중국 사회는 자신의 세계 속 위상을 이전과 다르게 설명했고, 이전과 다른 형태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보여줬다. 서구 사회는 중국이 어느새 미국에 버금가는,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경제체가 됐다는 사실을 이번 위기 과정에서 새삼 깨달았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자기 존재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 후 중국을 유심히 지켜봤다. 정치 리더십은 안정됐고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등 국가발전 전략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박근혜정부도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체결하고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주요국 정상들이 외면한 중국 전승절 행사까지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그런데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 측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 고위관리의 언행이나 관영매체 논조에서 G2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월 홍문연(鴻門宴) 고사를 인용해 “항장이 칼춤 추는 의도는 유방을 해치려는 데 있다”고 했다. 한국이 중국을 겨냥해 칼춤 추는 일개 장수라는 뜻이다. 외교적 결례다. 지난달 사드 배치 결정 후엔 중국 관영매체의 치졸한 겁박이 연일 반복된다. 글로벌타임스는 ‘사드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고, 중국의 관변학자는 한 기고문에서 “사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과 교역이 다시 늘고 있다. 북·중 관계 회복 움직임도 보인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성명 추진은 ‘사드 반대’ 문구를 넣으려는 중국의 억지로 무산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가 퇴색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중국은 대국답지 않다. 경제력은 세계 2위지만 외교나 언론은 뒤처진다. 그들이 과연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중화권 조공관계에 있는 한낱 번국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닌가.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훼손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사드 배치 주체가 주한미군인데도 미국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한국의 안보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런 중국을 상대로 우리가 위축돼선 안 된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실속없이 떠드는 말에 겁낼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나라 말기 계몽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1910년 ‘국풍보(國風報)’에 게재한 글 ‘조선 멸망의 원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조선 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번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중국은 우리를 ‘죽은 뱀’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거칠게 반응하는 중국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중국은 오랜 기간 세계적 지배국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 이유를 알 듯하다. 애초에 G2라는 말은 신기루였던 게 아닐까. 한때 우리 눈을 현혹하다가 사라져버린.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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