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호원칼럼] 설마는 나라를 잡았다

관련이슈 강호원 칼럼

입력 : 2016-08-22 22:27:25 수정 : 2016-08-22 22:27: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나라 힘 기를 생각 않고
당쟁만 일삼는 나라
누가 지켜주고
누가 머리 숙여 사과하겠나
충무공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남긴 장계. 1594년 11월 이렇게 적었다. “동류를 모아 옮겨 다니며 구걸하는 무리들… 군사는 양식을 보지 못하고 질병은 번져 숨지는 일이 줄을 잇는다.” 임진왜란이 터진 지 2년7개월 지난 때다. 살육을 피해 논밭은 버리고 떠난 농민들. 기아는 강토를 휩쓸었다. 구걸을 하지만 쌀 한 톨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까. 가는 곳마다 시신이 널브러지고, 아이는 버려졌다.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임진왜란 1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통신사 손에 국서를 보냈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명으로 가겠다(率兵超入大明).” ‘징비록’과 선조실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쳐들어간다는 것까지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신하의 말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쳐들어가는 것은 잠든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바른 대로 적어 미리 준비하도록 하고 승부를 가리겠다.”

강호원 논설위원
국서를 갖고 1591년 3월 돌아온 조선통신사.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말은 달랐다. 정사는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부사는 “그런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황은 서인, 김은 동인이다. 당쟁에 눈먼 조선. 그해 10월 서울에 온 일본 사신 겐소(玄蘇)가 또 말했다. “명을 치려 하니 조선에서 길을 인도하라.” 6개월 뒤 왜군은 부산포에 밀어닥쳤다. 그렇게 시작된 6년 병화에 조선 백성은 어육신세로 변하고 말았다.

“쳐들어가겠다”고 하는데도 믿지 않고 당쟁만 요란했던 조선.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마’는 나라를 잡았다. 조선 500년? 운이 좋아 가는 명맥을 이은 것은 아닐까.

지금은 어떨까. 그다지 다르지 않다. 북로남왜(北虜南倭) 위기는 그때 못지않다. 북핵을 기준으로 하면 20년, 일본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억지를 담은 것을 기준으로 하면 10년이 넘었다. 환란의 조짐은 점점 커진다. 대처하는 양태는 어떨까. 420여년 전을 빼닮았다.

북한은 입만 열면 핵공격 위협을 한다.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 시작되자 또 “핵 선제 타격” 협박을 했다. 핵과 탄도미사일도 고도화했다. 주변 강대국이 모두 버거워할 정도다. 이 정도라면 무엇으로 막을지를 모두가 말해야 하지 않는가. 핵공격 소리를 너무 들어 무감각해진 건가,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 건가. 엉뚱한 싸움만 한다. 북한 공격을 막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두고 사생결단이라도 할 판이다. 동서 당쟁과 무엇이 다를까.

일본에서는 묘한 일이 벌어진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양위. 왜 물러나려 하는 걸까. 일왕은 태평양전쟁 추도식에서 말했다. “지난 전쟁을 깊이 반성하며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베 신조 총리는 달랐다. 4년째 사과 비슷한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반전 추도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 일왕. 역사의식이 살아 있다. 일본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왕이 늙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믿기 힘든 말이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극우 바람. 일왕과 아베 총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키히토 일왕 퇴위 후 일본은 어떻게 변할까. 극우 군국주의는 역사적인 변환기를 맞을 것 같다. 일본이 대외적인 군사 팽창을 꾀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는 임진왜란, 제국주의 침략을 잇는 또 하나의 흐름이다.

일본군위안부 사죄? 사죄는 고사하고 사과 한마디 할 턱이 없지 않은가. 23년 전 발표한 고노담화는 이미 폐기된 것 아닌가. 위안부 해법을 놓고 또 옥신각신한다. 그런 식으로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힘없는 자는 사과받기 힘들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치고받는 싸움에 길들여진 나라.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나라를 망친 참담한 경험이 많으니 그 종국도 내다보기 어렵지 않다. 위기가 깊으면 뜻을 모아 나라의 힘을 기르는 법 아닌가. 현실은 딴판이다. 그런 것은 안중에 없다. 곳곳이 싸움판이다. 그 중심에 선 정치. 패당을 지어 정쟁만 일삼는다. “설마 환란이 닥칠까” 그런 생각을 하는가. 설마는 나라를 잡지 않았던가.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