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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우리가 아일랜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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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1 22:32:01 수정 : 2016-09-01 22: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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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 명분과 경제 실익 앞세워
EU의 애플 세금추징 결정에
단호히 반기 든 유럽 인구소국
강 건너 불로 여길 일 아니다
세금은 반대급부 없는 일방적 채권이다. 지급액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요금과는 다르다. 누진제 전기요금보다 더 고약하다. 아일랜드 출신의 18세기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세금 내고 즐거워하는 것은 사랑을 하면서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불가능한 능력”이라고 했다. 세금 혐오는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다들 세금을 낸다. 내심 마뜩잖지만 그나마 공익을 키울 길이 거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납세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적 사유도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그 유명한 어록도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세금과 죽음을 제외하고는”이라는. 그런데 국가권력의 징세권은 정말 불가침의 권한인가. 흥미로운 사례가 등장했다. 유럽연합(EU)이 엊그제 애플을 상대로 투하한 세금폭탄이다. 제대로 터질지가 관심사다.

이승현 논설위원
EU 집행위원회가 부과한 추징액은 130억유로(약 16조억원)다. 미국 애플의 두 자회사가 위치한 아일랜드 정부에 받아 챙기라고 한 것이다. 애플과 미국은 반발한다. 관전 포인트는 아일랜드 정부의 선택이다. 즉각 EU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애플과 미국은 그렇다 치자. 아일랜드는 왜 저러나. EU 결정에 순응하면 횡재를 할 판국인데. 두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국가 주권이란 명분, 다른 하나는 경제적 실익이다.

먼저, 명분이다. EU는 28개 회원국의 경제·정치 공동체에 불과할 뿐 연방국가는 아니다. 2009년 발효된 리스본조약이 헌법 구실을, 규칙 지침 결정 등이 법률 구실을 하지만 회원국은 다 나름의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EU는 조약과 결정 등으로 회원국을 통제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동행이다. 그런데 통제 시도가 회원국 법체계나 국민감정을 건드리면 어찌 되나. 얼음이 깨질 수 있다. 아일랜드의 반기가 그런 경우다.

아일랜드의 마이클 누난 재정부 장관은 항소 계획을 발표하며 “우리 세제 시스템의 완결성을 지키기 위해, EU 규정이 회원국 조세 권한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 주권을 명분으로 내건 것이다. 정계에선 “문밖으로 나갈 것”이란 협박성 발언까지 나온다. 영국이 EU 탈퇴를 택한 브렉시트에 이어 아일랜드가 탈퇴하는 ‘이렉시트(Irecxit)’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익도 중요한 잣대다. 아일랜드 법인세율은 1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왜 낮을까. 그것이 국부를 키우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들어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다 장기적으로 경제활성화 효과도 크다고 보는 것이다. 누난 장관은 EU의 추징 요구에 대해 “감자의 씨를 먹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익 계산이 어떤지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아일랜드는 인구 소국이고 산업기반도 취약하다. 21세기는 글로벌 기업이 국경을 넘나들며 투자 대상처를 물색하는 시대다. 기업이 국가를 쇼핑한다. 아일랜드가 해외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싱가포르 유형의 생존전략을 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법인세 운용도 같은 맥락이다. EU 결정이 먹힐 까닭이 없다.

시계는 불투명하다. EU가 어정쩡한 봉합으로 넘어갈 수도,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미국과 EU 간의 무역분쟁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다. 강 건너 불로 여길 처지가 아니다. 우리 글로벌 기업이 코너에 몰릴 수도, 거꾸로 정부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갈림길에 놓인 국가가 아일랜드 아닌 대한민국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법인세를 비롯한 세제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 말고 국가대계 차원에서. 아일랜드만이 아니다. 내수·산업기반이 잘 다져진 국가들도 법인세 인하 경쟁에 열을 올린다. 국경의 장벽이 무용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다. 개별국가의 징세권은 이제 절대반지가 아니다. 세금 내고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다면 기업도 그렇다. 대한민국 세제는 일자리 낳는 기업을 어찌 대우하나. 그것이 흡사 보약이 되는 것처럼 ‘법인세 정상화’를 말하기에 앞서 밝은 눈으로 성찰할 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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