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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포트] 70일·200일 속도전… 북한의 흙수저 ‘청년돌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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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7 14:49:17 수정 : 2016-09-07 14: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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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에 골병드는 북한 청년들 / 평양 ‘려명거리’ 아파트 건설 강제동원… 사망·부상자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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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더운 피를 펄펄 끓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굴함 없이 당을 따라 곧바로 힘차게 나아가는 조선노동당의 믿음직한 청년전위가 되어야 한다. 청년들은 충정의 200일전투 기록장에 날마다 시간마다 새 기준 새 기록을 창조하고… (중략) … 전투계획을 일별, 주별, 월별로 무조건 넘쳐 수행해야 한다.’ (9월2일자 노동신문 1면 사설)

북한이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종료 이후에도 연일 청년들의 희생을 독려하는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청년층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계속되는 속도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난 겨울 영하 30∼40도의 혹한에서 맨손으로 백두산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던 이들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 여름에는 평양 려명거리를 비롯한 김정은 시대의 치적 과시용 건설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70일전투에 이은 200일전투 등 속도전 지속으로 청년층의 피로도와 불만이 누적됨에 따라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 국면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까지 언급하며 내부결속 차원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으나 청년층은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달 28일 북한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경축 횃불야회’에 참석한 청년들이 횃불로 ‘영원한 태양의 청년동맹 김정은’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일전투가 뭐기에… 려명거리 건설 등 끝없는 주민 동원

북한은 지난 5월 열린 7차 노동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2016~2020)의 첫해 목표 달성을 위해 6월부터 200일전투를 시작했다. 북한은 ‘자력갱생’의 김정은 시대 버전인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200일전투를 통해 인민경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식으로 주민을 겨냥한 선전작업을 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면에 게재한 사설(7월22일자)에서 “오늘의 200일전투는 우리 공화국을 질식시키려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고립 압살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자력갱생 대진군”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설은 또 “우는 소리만 하는 현상, 자기의 것은 홀시하고 덮어놓고 남의 것만 쳐다보는 그릇된 태도가 절대로 나타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우는 소리 하지 말고 성과를 내라는 얘기다. 

려명거리 건설 현장. 사진 = 조선중앙TV 화면
200일전투의 핵심 과제는 려명거리 건설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3월 려명거리 건설을 지시하면서 올해 안에 완료하라고 주문했다. 려명거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시신이 보관된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이 있는 영흥 사거리까지 동서로 뻗어 있는 3㎞ 구간이다. 70층, 55층, 50층, 40층, 35층 아파트와 상업·공공시설 등 100여 동을 신축·보수한다. 김 위원장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위한 주거공간이다. 김 위원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한국)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며 “올해 중에 반드시 일떠세우자(건설하자)”고 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북한 매체들은 려명거리 건설 성과를 중계했다. 15층 살림집 골조를 불과 20여일 만에 보란 듯이 일떠세움(5월30일)→2000여 세대 살림집 골조공사 완료(6월11일)→2800여 세대의 살림집 골조공사 완료(6월19일)→두 달 남짓 기간에 려명거리 55층 살림집 골조공사 완공(7월18일)→려명거리 모든 건축대상 골조공사 100% 완수(8월5일) 등 속도전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들은 “대북제재에도 려명거리 70층 골조공사를 완성한 것은 기적”이라거나 “고강도 제재에 대한 우리 인민의 대답”이라고 자평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에서 연설한 김정은 위원장의 강령을 관철하기 위한 청년 결의대회가 지난 8월30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청년층 희생 담보한 무리한 속도전

무리한 속도전의 이면에는 주민들의 가혹한 희생이 있다. 건설 중장비도 변변찮은 상황에서 6월부터 하루 100세대에 달하는 아파트 골조 공사를 완료했다는 북한 매체 보도를 보면 려명거리 건설현장에 동원된 청년 돌격대와 젊은 학생들의 노동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작업 환경이 열악한 데다 영양이 부실한 상태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공사현장에서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북한 주민들의 전언도 끊이지 않는다. 노동신문은 7월8일자에서 과거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1·2호 건설을 추진하는 속도전 사업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점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2014년 5월 평양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는 무리한 속도전의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꼽힌다. 당시 북한 매체는 최부일 인민보안부장(현재 인민보안성으로 개칭)이 주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관건은 속도전으로 공사를 마친 이후다. 청년들이 ‘만리마 속도’ 구호를 외치며 건설한 초고층 건물이 과연 인민경제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전력 공급도 중요한 문제”라며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초고층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마천루 건설에 집착하면 그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가 평양을 피해갈지도 미지수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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