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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대통령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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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8 21:24:35 수정 : 2016-09-08 21: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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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사태로 민심 떠나도
청와대엔 예스맨만 즐비
당태종 ‘정관정요’ 다시 읽고
반듯한 ‘사람의 거울’ 세워야
막 조회를 끝낸 황제가 씩씩거리며 내실로 들어왔다. “저 촌놈을 죽여 버리고 말 테야.” 문덕황후가 깜짝 놀라 묻자 황제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언성을 높였다. “위징이란 놈이 조정에서 자꾸 나를 능멸한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황후는 정복으로 차려입고 황제에게 예를 갖췄다. 황후가 감읍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임금이 밝아야 바른 신하가 있다고 합니다. 위징이 그토록 직언하고 있으니 폐하가 밝다는 증표가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노기를 거두었다.

태종은 시시콜콜 잘잘못을 따지는 위징의 간언 덕택에 중국 최고의 명군에 오를 수 있었다. 후일 태종은 위징이 세상을 떠나자 이렇게 탄식했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선악을 가릴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없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도다!” 물론 태종은 세 개의 거울 중 사람을 가장 아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꼭 나흘 전에 쓴 ‘박근혜의 거울’이란 칼럼의 앞부분이다. 이 글에서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거울은 육영수 여사였다고 적었다. 육 여사는 껄끄러운 시중 여론을 남편에게 직접 전하거나 참모들에게 보고하라고 자주 채근했다. 하지만 그의 딸인 박 대통령은 그런 반듯한 거울을 갖지 못했다. 대통령직인수위 때에도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바짝 엎드려 ‘예스’만 합창하기에 바빴다. 당시 칼럼은 박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기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반듯한 ‘사람의 거울’을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후 3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기우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 참모진에는 대통령의 말에 “지당하옵니다”만 연발하는 ‘지당 맨’들이 즐비하다. 대통령이 민심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어도 아무도 ‘노’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우병우 민정수석 사태는 그런 불통 권부의 극명한 실례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허물을 지적하는 사람을 향해 레이저 눈빛을 쏘아대는 대통령에게 누가 감히 진언을 하려 들겠는가. 겁 없이 용린을 건드리다 찍힌 인물이 어디 한둘인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그렇고, 최근 물러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그런 경우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정관정요 같은 책들을 읽고 노트에 적었는데 몇 년 뒤 그런 글들이 어느새 저의 피와 살이 돼 있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정관정요는 중국의 황금기를 이끈 당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문답을 실은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대통령은 어떤 혜안을 얻었는가. 당태종은 자신의 적까지 품에 안는 넓은 가슴이 있었기에 걸출한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위징 역시 반대 진영에 있었던 인물이다. 황제 후계권을 놓고 다툴 때 형의 편에 서서 태종을 죽이라고 사주했지만 태종은 즉위 후에 그를 발탁해 재상에 앉혔다. 그런 새 주인을 위해 위징은 200회가 넘는 간언을 올렸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위징 같은 거울이 있는가.

대통령은 애국심이 무척 강하다. 그 점은 국민들도 다 안다. 그런데 대통령이 믿는 애국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삐뚤어진 거울에 비친 모습을 진짜 애국으로 믿고 국정을 끌고 간다면? 국정의 수레바퀴가 똑바로 굴러갈 리 없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그런 최악의 경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국민의 상당수는 앞으로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사용해온 사람의 거울 역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33일이 남았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다. 대통령은 홀로 정관정요를 다시 꺼내 자신을 비춰줄 사람의 거울이 반듯한지 살펴야 한다. 대통령의 거울에 5000만 국민의 삶이 달려 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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