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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집값 떠받치는 가계부채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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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9 20:31:20 수정 : 2016-09-09 22: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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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과 투기로 집값 띄워놓고 정상화라는 정부의 억지논리 / 무주택 서민의 고통 안다면 입으로만 민생 외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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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의주시할게요.”, “어, 그래. 근데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니?”, “예의를 지키면서 지켜본다는 말 아녜요?”, “어, 그래. 제대로 알고 있구나.”

언젠가 TV드라마에서 30대 백수 삼촌과 ‘중딩’ 조카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듣고 빵 터진 적이 있다. 예의주시(銳意注視),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본다는 이 말을 작가는 그렇게 비틀어 시청자를 폭소케 했다. 많은 이들이 흔히 쓰면서도 정작 뜻은 제대로 모르는 언어사용의 맹점을 익살스럽게 꼬집은 것이다.

정부도 이 말을 참 많이 쓴다. 과거 무슨 무슨 대책 발표자료엔 어김없이 “예의주시하겠다”는 말이 양념처럼 들어갔다. 요즘엔 “모니터링 강화”라는 ‘양념’이 추가됐는데 그 말이 그 말이다. 이런 표현을 볼 때마다 실소가 터진다. 드라마의 개그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열심히 들여다보겠다는 게 무슨 대책인가 싶어서다.

최근 정부 관계기관 합동으로 마련해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에도 ‘모니터링 강화’라는 표현이 있다. “가계부채가 큰 일”이라며 내놓은 대책인데, “열심히 들여다보겠다”고 하니 “불이야” 소리쳐놓고 불이 어떻게 번지나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건가. 그 한가한 레토릭에 다시 실소가 터졌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이명박정부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 게 2011년이다. 그동안 뭘 했기에 아직도 “모니터링 강화”, “예의주시”인가.

하긴 지난 2년 정부는 예의주시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계부채를 걱정하기는커녕 거꾸로 가계부채를 늘리느라 너무 바빴다.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어 금리를 끌어내리고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낼 수 있는 한도를 과감하게 늘렸다. “빚을 내 집을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심지어 정부는 투기수요까지 부추겼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을 풀고, 동일인에게 아파트 중도금대출 보증을 여러 건씩 해줬다. 실수요가 아닌 투기를 정부가 단속하는 게 아니라 조장한 것이다.

정부는 얼어붙은 경기를 녹이고 싶었을 것이다. 처지는 성장률을 끌어올려 실력을, 그 성과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계부채 화력으로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단기부양책을 밀어붙인 것일 텐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얼마나 빗나간 화살인지 정부는 모른 체했다. 정부 안팎에서 숱하게 경고음이 울렸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경제정책 고수들의 경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들이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만 콕 집어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계부채를 이렇게 늘려도 되느냐”는 물음에 정부 고위 인사는 “전혀 문제 없다”고 큰소리쳤다.

류순열 선임기자
“장래 안정과 성장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되는 정책”(조순), “후손들의 소득을 빼앗아오는 짓이며 국가 불행을 키우는 일”(박승), “토건국가 정책은 금물. 부동산 경기로 살리겠다는 과거 연장선의 정책은 (더 이상)안 된다.”(이헌재)…. 수년 전부터 최근까지 경제석학, 정책고수들의 걱정과 경고는 꼬리를 물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부작용만 큰 구시대적 정책”으로 규정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가계부채가 정말 걱정이 되었다면 대책의 메뉴는 달랐어야 했다.투기 조장을 멈추고 시장에 억제 시그널을 분명히 줬어야 했다. 그러나 대책에서 분양권 전매제한은 쏙 뺐다. 빗장 푼 주택금융 규제도 조이지 않았다. 대신 택지공급을 줄이기로 했다. 가계부채 고삐를 쥘 알맹이는 쏙 빼고 집값을 떠받칠 정책은 집어넣은 것이다. 뒷북 가계부채 대책이 집값 떠받치기 메시지로 시장에 전달된 이유다.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은 더 들썩이고 있다. 가계부채도 따라서 더 늘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높은 주거비는 ‘헬조선’ 구성항목 중 하나다. 그런데 정부는 빚과 투기로 집값을 띄워놓고 이를 ‘정상화’라고 부른다. 그 정상화로 무주택서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은 외면한다. 부디 입으로만 민생을 말하지 말고 서민의 삶을 예의주시해주기 바란다. 그게 민생을 말할 자격이고, 예의다. 그럴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가계부채 대책도 나올 것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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