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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핵폭주 앞에 선 차기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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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13 19:56:25 수정 : 2016-09-13 19: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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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 같은 정책 토론 활성화해야
나라 지키려면 국민통합 정치력 중요
모병제에 대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하자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히틀러도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되로 받은 것을 말로 돌려주었다. 자신이 내놓은 정책을 비판한다고 동료 의원을 천하의 전쟁광인 히틀러로 몰아간 것인데 이런 식의 말폭탄은 앞으로 대선판이 뜨거워지면 더욱 불을 뿜을 것이다.

남 지사는 반격하면서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추구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같은 힘 센 선진국은 징병제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안보를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합리주의와 전체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공리주의 영향이 크다. 개인의 선택에 반하는 징병제는 국가가 시민을 노예처럼 소유하고 멋대로 다뤄서 때론 전사할 수도 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노예제’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백영철 편집인
국민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모병제 정신은 국민 행복을 위해 나무랄 데 없지만 현실적으로 부작용도 크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남북전쟁 때 미국 젊은이들은 정부에 돈을 내는 것으로 병역을 때우거나 대리복무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남북전쟁은 부자들의 전쟁,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라는 표어가 붙을 정도였다. 부자들이 전쟁을 벌였지만 들판에는 가난한 자들이 나가 피를 흘린 것이다.

최강대국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 모병제는 불공평하며 계층 간 차별이 문제가 된다. 국가안보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징병제를 유지한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때 학생들과 특정 직업군에서 참전을 피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1세기 들어 이라크 전장엔 용병들이 가득했을 뿐 미국의 특권층 젊은이들은 군복무를 기피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지원군은 저소득층과 중간 소득층 지역 출신,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현저히 높았고 네명 중 한명이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일류 대학 졸업생의 입대자는 1%도 안 되고 의회의원의 자녀 가운데 지원자는 겨우 2%였다고 한다.

요샛말로 금수저는 다 빠지고 흙수저만 군대에 가면 공정하지 못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책임을 직업이 없는 사람들만이 짊어진다면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자발성이 높아져 강제성을 띤 징병제보다 정예강군을 만드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대응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도 무시할 수 없다.

모병제가 이 시대에 절실한 정책인지,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이슈인지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해볼 만한 의제다. 일부 의원들처럼 “모병제 도입은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라거나 “김정은의 핵폭주 앞에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봉쇄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차기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탐색해야 한다.

그제 청와대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는 얼굴만 붉히고 헤어졌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였을 뿐이었다. 북한 김정은의 핵폭주라는 대형 안보 위기를 이기는 최고의 무기는 국민 단합이다. “평양을 먼지로 만들겠다”는 식의 말폭탄만으로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위기일수록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력이 필요한데도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불안을 키웠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대국적 관점에서 작은 견해 차이는 해소해야 마땅하다. 현실적 위협 앞에서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에 집착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논리에 휩싸일 계제가 아닌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과 명분론에 사로잡혀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행복이라는 훨씬 큰 가치를 놓쳐서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정치판이 우리보다 나을 것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공화당 후보는 거짓말쟁이와 사기꾼 같은 상스러운 금기어를 쏟아내고 있다. 그로 인해 공화당 진영마저 분열됐으니 나라가 두 동강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미국의 지도자들은 국가안보의 위기 앞에서 빛나는 지도력을 발휘할 줄 안다. 대통령은 초당파적인 모범을 보이고 설득할 줄 알며 야당도 당파를 초월해 거국적으로 최고 지도자의 뒤에 설 줄 안다. 그래서 세계 최강대국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제법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중엔 시대정신이 뭔지도 모르고 하루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지도자가 적지 않았다. 권력의지만 강해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려면 국민을 단합시키는 정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뭘까. 경제적 양극화, 청년 실업, 고령화 사회, 복지 이슈 등 수두룩하다. 그 못지않게 김정은의 핵폭주는 차기 지도자들에게 숙제를 던졌다. 국가안보와 한반도 평화 의제는 주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10∼20년 뒤의 한반도 미래를 말할 줄 아는 지도자 뒤에 국민은 줄 설 것이다. 핵무장과 미국 전술핵, 사드 배치 등을 두고 한건주의적으로 접근하는 후보들은 걸러내야 한다.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입으로 말폭탄을 던지는 것은 자유지만, 한국의 차기 지도자가 국민과 나라의 앞날에 총을 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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