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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4> 부모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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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17 14:00:00 수정 : 2016-09-17 14: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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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에 아이에 대한 다짐을 새겨봅니다
이제 추석도 지나고 연휴 끝자락에 들어섰다.

흐린 날씨 탓에 밝은 달은 볼 수 없었지만, 일상의 쳇바퀴가 잠시 느리게 돌아가는 명절의 끝무렵이면 마음 먹고 생각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맘때쯤부터인 것 같다.

‘벌써 서른 중반도 지나가는 구나’라는 생각에서 딸, 아내, 엄마로서 나의 모습과 관계의 미래를 어렴풋하게 그려보게 된다. 육아일기인 만큼 아들과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적어보려 한다.

20개월인 아이는 요즘 깜찍하고 귀여운 행동을 많이 하지만 떼와 보챔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나는 ‘진짜 안 되는 것 빼고는 들어주자’는 주의라 웬만해서는 들어주는 편이다. 어제 저녁만 해도 잠들기 의식을 모두 마치고 꿈나라에 빠져들 때쯤, 아이는 갑자기 일어나 그림책을 가져왔다. “이제 자야지∼ 엄마 졸려”라고 거절했더니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물에 젖은 옷처럼 무거운 의식을 잠에서 깨웠다. “자아, 다 봤다.” 아이는 더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같은 책을 보고 또 본 뒤에야 아이는 잠에 들었다. 보통은 책이 아니라 자동차 등 승용 완구를 태워달라고 할 때가 많다. 나는 눈을 반쯤 감고는 자동차를 끌고 거실을 어슬렁거린다. 아직은 아이의 욕구가 단순하다보니 몇 번만 들어주면 부모의 뜻대로 따라오곤 한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하고 센 욕망을 갖게 되는 4∼5살부터 본격적인 훈육 갈등을 겪게 될 테고, 학령기 아동이 되면 교육 문제로 갈등하게 될 것이다. 주입식 위주의 입시 교육과 집단 간 서열을 조장하는 학벌 문화에서 난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모자의 대화를 듣고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너 그렇게 게임만 하면 서울대, 연대, 고대는 절대 못 가.”

“왜?”

“게임만 하는데 성적이 나오겠냐? 게임 좀 그만 해라.”

한 엄마와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대화였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꼬꼬마 아들을 둔 초보 엄마로서 이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답답했다. 게임에 빠져들면 안 되는 이유로 내 건 논거가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였고, 아이는 어른들의 틀에 세뇌돼 있으면서도 반항심을 갖고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 착잡해졌다. 부모로서 걱정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는 상상 속 아이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쟤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고민스러웠다.

이런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녀와의 관계의 틀이 형성될 것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장 과정의 문제를 부모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이라는 무의식이 형성된다. 각각의 상황에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가 된 순간부터 마음의 명제로 삼은 문장이 있었다. ‘부모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청소년기에 친정 엄마에게 들었던 지적 중에서 “미리미리 좀 준비해라”와 “만화책 좀 보지마라”의 느낌은 크게 달랐다. 둘 다 자식의 답답한 행동을 질책하는, 나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미리미리 좀 준비해라’에는 반항심이 일지 않았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항상 미리미리 준비했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아, 난 왜 이러지’ 답답함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만화책 좀 보지 마라. 공부는 언제 할래?”라는 말에는 반항심이 꿈틀거렸다. ‘왜 공부만 해야해?’, ‘엄마는 전혀 공부 안 하면서’, ‘만화가 뭐가 나쁜데’라고 속으로 외쳤다. 윗세대의 많은 분들이 그러했듯 부모님은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후 생활에만 집중했다. 우리 집은 배움의 기쁨을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신 주변 어른들이 “자식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네가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나는 부모의 그늘에서 먹고 사는 어려움을 잊는 대가로 성적이라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압박이 싫었다. 사춘기가 아니었던가.

언젠가 나의 아들도 게임 삼매경에 빠지는 시기를 겪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면 안 돼.” 나 역시 이 말을 하게 될 텐데 어떤 이유를 내세워야 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부모는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을 새길 뿐이다.

아무리 지적하고 가르쳐도 부모가 실천하지 않으면 아이는 따르지 않거나, 따르는 척하면서 반항심을 가질 것이다. 애가 컴퓨터 게임만 한다면 내가 집에서 TV만 보지는 않았는지, 직장에 매여 아이와의 대화에 소홀한 건 아닌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문화적 욕구를 잊고 산 건 아닌지 돌아보려고 한다.

아무리 친구처럼 지내려 해도 아이와 나 사이에는 30년이 넘는 세월이 있다. 나 역시 세대 차이, 기성 세대, 어른이라는 단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천하지 않는 걸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아이에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졸린 눈을 반쯤 감고 아이의 자동차를 밀어주는 엄마가 10∼15년 후 아이의 사춘기 때는 어떤 엄마가 돼 있을까. 지금의 다짐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한가위 달에 그 마음을 새겨본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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