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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6> “여보, 육아에 손발을 맞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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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1 14:00:00 수정 : 2016-10-02 15: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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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경기도에 있는 한 자연사박물관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꼬맹이는 아빠와 함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아담하게 조성된 박물관 잔디밭에 앉아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하게 된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얼마나 소중해졌는지 모른다. 치열한 한 때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하는 복에 겨운 시기지만, 너무나 피곤할 때면 지금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오곤 한다.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남편과 아들이 둘이서 오래 놀다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들었다.

박물관을 찾은 남녀에게는 모두 ‘귀여운 혹’이 딸려 있었다. 움직이는 공룡이 전시돼 있는 만큼 아이들의 나들이를 위한 곳이었다. 잔디밭에는 5∼6살의 여자아이와 2살 가량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각각 성별과 연령이 비슷한 두 가족이 있었다.

시선을 먼저 잡아끈 건 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야!!!! 너 또 이럴래? 너 때문에 과자가 부서졌잖아.”

아이 엄마는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이가 바닥에 놓인 가방에서 엄마의 허락 없이 과자를 꺼내다가 떨어뜨린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네. 애가 평소에 말을 안 듣나.’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모처럼의 여유가 일그러진 느낌이었다. ‘뭐 사정이 있겠지.’

조용해지는가 싶으면 딸에게 호통치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한 듯 했다.

“안 돼, 너 왜 이렇게 귀찮게 해, 너 때문에 진짜 짜증나는 거 알아?!!”

엄마의 짜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았다. 작은 자극에도 화산처럼 폭발했다. 애가 크게 개구지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건 아니었다. 첫째를 타박하면서도 둘째 아이에게는 간간히 뽀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간 차를 두고 잔디밭에 온 다른 가족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아빠와 딸은 캐치볼을 했고 엄마는 그 옆에서 둘째를 안은 채 딸을 응원하고 있었다. “잘했어. 아빠보다 잘하는데?” 아이는 활짝 웃으며 공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같은 연령대의 두 여자아이가 다른 처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두 가족을 관찰하면서 보냈다. 시종일관 꾸지람을 당하는 아이와 부모의 응원을 받고 있는 아이를 보며 섣부른 판단이지만 ‘모두 저마다의 몫을 가지고 태어나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계속 화를 낼 거면 왜 놀러왔지.’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던 중 문득, 엄마의 태도 외에도 두 가족의 다른 상황이 보였다. 아빠의 모습이었다. 캐치볼을 하며 열심히 놀아주는 아빠와 달리, 다른 아빠는 아내와 아이 둘을 잔디밭에 놓고는 한참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혼자 애 둘을 보면서 첫째한테 계속 짜증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태도도 잘못됐지만 아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공동의 몫인 것이다. 사정은 모르지만 계속 짜증내는 엄마를 묵인하는 아빠, 아내와 아이들 곁에 있지 않는 아빠도 이 상황을 초래한 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육아는 부부의 손발이 맞아야 한다. 공통의 가치관을 세워야 하고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 뻔한 말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부부도 손발이 맞지 않아 갈등을 겪을 때가 많다. 최근 나는 아이 앞에서 남편에 대한 끓어오르는 감정을 쏟아내고는 반성한 일이 있었다.

요즘 아이가 잠드는 시각은 보통 새벽 1∼2시다. 예전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면 아이는 꿈나라에 있었다. 아쉽기도 했고 새벽 시간을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어 들뜨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야근한 날에도 아이가 깨어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늦게 자는 경우가 많다더니 우리 애는 야행성 꼬마가 돼 버렸다.

나의 수면 시간은 엄청나게 짧아졌다. 5시간조차 안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휴일이면 12시간 이상 잤던 과거의 나날은 말 그대로 꿈이 되어버렸다.

머릿속에 벌레가 윙윙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두통이었다. 어린 시절 친정 엄마는 ‘엄마’라는 철인으로 보였는데 지금 나는 골골 대는 여학생일 뿐이었다. 내 사무만으로도 바쁜 내가 엄마가 된 것이다. 수면욕에 시름하며 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번번이 실패했다. 아이가 선잠에 들 때마다 신랑이 귀가했기 때문이었다. 찰칵- 문 열리는 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번쩍 들고 외쳤다. “아빠!!!!” 남편도 아이를 보며 “아빠 왔다∼” 반가워했다. 잠들었던 시간만큼 충전된 아이는 평일이면 저녁에만 보는 엄마, 아빠와 더 놀고 싶어했다.

첫날은 “아이고” 탄식만 내뱉었고 둘째날은 “말 걸지 말고 숨어 있어”라고 당부했다. 숨어도 소용 없었다. 셋째날은 “왜 타이밍이 이런 거야. 늦게 들어올 때는 출발 전에 연락해. 나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계속 실패하고 주말을 맞았다. 박물관에 다녀온 날이었다.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다. 아이가 선잠의 문턱을 갓 넘었을 때 들어왔다. “아빠!!!”

또.... 또.... 같은 상황이었다. ‘왜 하필 애를 재울 때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들어온 거야.’ 감정의 수문이 열렸다. 댐에서 물줄기가 방류됐다. 나는 아이 앞에서 화를 냈다.

“그럼 애 재울 때 나가지 말라고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 남편은 항변했다.

“이번 주에 3번이나 애 재울 때 들어와서 실패한 걸 당신도 알잖아. 근데 왜 몰라? 일하는 날은 어쩔 수 없다해도 휴일에는 같이 노력해야 할 거 아냐.”

남편은 화성인이었던 것이었다. 금성인(여자)은 미세한 표현으로도 상대의 요구를 읽어내지만 화성인(남자)은 요구사항을 직접적으로 말해줘야 이해한다고 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저자의 글이 떠올랐다.

아이는 할머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이 되돌아왔다.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면 애는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로 뭐하는 건가,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수면욕이라는 기본 욕구가 해소 안 되는 상태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니 내가 너무나 예민해진 것 같았다. 20개월인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자연스레 해소될 단순한 상황이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짜증내는 엄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날, 바로 그 날 밤에 나 역시 아이 앞에서 신경질을 냈다. 남한테 들이대는 잣대를 자신이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후회하고 반성했다. 남편에게 목격담까지 모두 설명하면서 당부했다.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안 돼. 같이 노력하자. 아이를 키우는 수많은 날들 속에서 더 복잡하고 힘든 상황을 맞게 될 텐데 우리가 손발을 맞춰야지.”

이후로 남편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문자를 보낸다. “아들은 잠들었어?”라고. 이런 배려를 보며 이제서야 ‘저이도 피곤할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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