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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트럼프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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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5 01:13:29 수정 : 2016-10-05 01: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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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현상 만든 ‘분노의 정치’
이 대표 단식이 보여준 극단의 정치
여의도 정치에 대한 혐오 키워
내년 대선 변화의 바람 부를 것
여의도 정치만큼 워싱턴 정치도 인기가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치 멘토’ 톰 대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2007년 초선인 오바마를 설득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내보냈다. 연방 상원의원 2년 경력은 너무 짧지 않으냐는 오바마의 걱정에 대슐은 “상원의원을 오래할수록 해명할 일만 많아진다. 해명이 많아지면 설득력은 떨어진다”고 했다. 대선 공식 출마 선언을 한 날, 오바마는 “워싱턴 방식을 배울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워싱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 만큼의 시간은 워싱턴에 있었다”고 선공을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아예 워싱턴 근처에도 가지 않은 인물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 염증, 분노를 대변한 덕분에 미 대통령 선거 레이스를 지구촌 화제로 만들 정도로 선전을 펼쳤다. ‘신참’ 오바마에 발목이 잡혀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이제 ‘아웃사이더’ 트럼프 공세에 시달리는 처지다. 지난달 26일 미 전역에 생중계된 1차 TV토론에서 트럼프는 “20년 정치를 하면서 나쁜 경험이 많은 정치인”이라고 클린턴을 몰아세웠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 글렌 벡은 토론 후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민주당, 힐러리의 약점을 파고들기보다는 워싱턴의 양당 정치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고 평했다.


황정미 논설위원
태평양 건너편 트럼프 현상은 국내에서도 보수,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초미의 관심사다. ‘여의도 내부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 불만이 차고 넘쳐서다. 지난 4·13 총선 결과를 예고편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았다. 역대 대선에서 성공하지 못한 제3지대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예상치 못한 국민의당 선거 결과 덕분이다. 집권 여당 대표에 호남 출신의 이정현 의원이 뽑힌 것도 변화의 기운과 무관치 않았다고 본다. 이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정치개혁을 경험토록 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진정성만큼은 인정했다.

이 대표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정치개혁을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거법, 국회법 개정, 개헌과 같은 제도적 개혁을 거론하는 데 비해 이 대표는 정치자금 창구로 변질된 출판기념회, 민원 해결용 쪽지 예산과 같은 특권 타파를 주장했다. 말단 당료에서 시작한 ‘흙수저’ 출신다웠다. 그가 사석에서 언론이 연중 시리즈로 뿌리 깊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파헤쳐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랜 기간 박근혜 대통령을 대변한 탓에 수평적 당·청 관계를 만드는 데 힘을 쓰진 못해도 정치권의 갑질 문화, 특권 의식을 바꾸는 데는 기여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 이 대표의 단식은 시작도, 끝도 느닷없었다. “정세균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의 하나”라던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게 의회 민주주의였을까. 그랬다면 정치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정세균 의장의 확언이라도 들었어야 한다. ‘절대 당론’을 내세워 의원들 소신을 틀어막는 일도 막았어야 한다. “식물대통령을 만들어 정권교체로 끌고 가려는 치밀한 전략”(조선일보 인터뷰) “이런 식으로 대통령 무릎을 꿇게 하려 한다면 사람 잘못 본 것”(방송기자클럽 토론회)이란 발언이 그의 속내를 짐작하게 한다.

대통령 레임덕을 막고 거야(巨野) 주도의 판을 엎겠다는 결의가 그를 움직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심정처럼 말이다. 그 덕분에 청와대를 향하던 의혹의 불길이 주춤했는지 몰라도 이정현표 정치개혁은 동력을 잃었다. 당내에서조차 그의 리더십이 휘청거린다. 친박·비박 계파 갈등만 부추긴 꼴이다. 인터넷 여론은 싸늘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여의도 정치쇼에 속지 않는다.” 이 대표 단식이 보여준 극단의 정치는 정치혐오, 냉소를 키웠다.

사소한 차이에 집착해 갈등을 키우는 워싱턴의 ‘좁쌀 정치’(smallness of politics)는 8년 전 오바마 돌풍, 올해 트럼프 현상을 낳았다. 전쟁 용어가 난무하는 사생결단식 여의도 정치도 내년 대선에 바람을 몰고올 것이다. ‘반기문 바람’이 불지, 세대교체 바람이 휩쓸지 알 수 없다. 오직 바람을 결정하는 건 국민이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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