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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사라지는 눈물의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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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7 00:42:15 수정 : 2016-10-07 00: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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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도 우는 건 마음의 비상구
맘껏 울 수 있는 곳이 천국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TV나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흔치 않았다. ‘남자는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금과옥조를 순순히 받아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남녀노소가 눈물을 철철 흘리는 장면이 온갖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는 시대라 눈물의 금기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것은 속내를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두려움은 남아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껏 울기 위해 화장실을, 독방을, 아무도 자신을 발견할 수 없는 외진 곳을 찾는다. 누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살짝 모른 척해주는 ‘눈물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면, 좀 더 진솔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마음의 비상구를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것이니.


정여울 작가
그런 의미에서 이상희의 시 ‘눈물소리’는 ‘눈물 흘리는 자유’야말로 아주 높은 수준의 심리적 특권임을 깨닫게 해준다. “오래 울어보자고/ 몰래 오르던 대여섯 살 적 지붕/ 새가 낮게 스치고/ 운동화 고무창이 타도록 뜨겁던/ 기와, 검은 비탈에/ 울음 가득한 작은 몸 눕히고/ 깍지 낀 두 손 배 위에 얹으면/ 눈꼬리 홈 따라 미끄러지는/ 눈물 소리 들렸다.” 소녀는 단지 오래 울고 싶은 열망에 기와집 지붕 위를 용감하게 기어오른다. 운동화 고무창이 타들어가도록 뜨거운 기왓장 위에 작은 몸을 눕히니, 비로소 눈꼬리 홈을 따라 미끄러지는 눈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울보야, 또 우니?/ 아무도 놀리지 않던/ 눈물 전곡(全曲) 감상실.”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눈물을 방해할 수 없다.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주르르 흐르는 소리까지 들린다. 우리에겐 이렇게 마음껏 조용히 울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혼자 일기를 쓰다가 눈물방울이 종이 위에 후드득 비처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주변이 워낙 고요했기에 눈물이 종이 위로 낙하하는 소리는 단단한 작은 공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처럼 무척이나 크게 울렸다. 생각보다 큰 눈물방울의 낙하 소리에 깜짝 놀라 눈물샘이 뚝 끊겨버릴 정도로 주위는 적막했다. 아무에게도 내 슬픔을 말할 수 없는 그 순간의 처참한 고요조차도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됐다.


이렇듯 가끔은 내 눈물 소리가 똑똑히 들릴 때까지 생활의 볼륨을 줄여보면 어떨까. 몇 년 전 갑자기 정전이 됐을 때, 그 순간의 완벽한 고요를 잊을 수 없다. 어디선가 청아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짹짹하는 참새 소리도 아니고 구구하는 비둘기 소리도 아닌, 내가 감별할 수 없는 신비롭고 영롱한 새 울음소리였다. 구슬픈 울음소리라기보다는 해맑은 웃음소리에 가까운 그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비로소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빈틈없는 소리의 공격 속에 스스로를 아주 오래 방치하고 있었음을. 전자미디어의 소리가 끊기면 습관적으로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잠시만 삶의 볼륨을 줄여보자. 눈꼬리 홈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 소리가 거대한 폭포수 소리처럼 우렁차게 들릴 때까지. 우리 삶에도 ‘눈물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내면의 감상실이 필요하니까. 남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울 수 있는 자리, 그곳이 우리들의 천국이니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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