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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못된 곰을 어찌 길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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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7 00:42:59 수정 : 2016-10-07 00: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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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판’이 연상될 정도로
갈수록 가관인 한미약품 사태
한국 자본시장의 명운 걸고
당국이 샅샅이 의혹 규명하길
‘주식의 신’으로 통한 유럽의 전설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정보는 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코스톨라니만이 아니다. 투자세계의 거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보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내부자만이 아는 미공개정보가 화근이다. 과신을 낳고 결국 패가망신을 부르기 일쑤여서다. 그 어떤 대단한 내부정보든 빙산의 일각만 보여준다는 점을 정보 입수자들이 종종 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운 좋게 횡재를 해도 사후에 사법 철퇴를 맞게 되는 사례도 흔하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탐욕적 사익 추구를 허용하는 선진 법제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증권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의 규제조항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반칙을 막는다.


이승현 논설위원
그렇다면 내부정보는 쓸모가 없나. 천만에. 거인들이 뭐라 조언하든 다들 내부정보를 못 찾아 안달이다. ‘정보는 보약’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탐욕에 눈이 먼 장삼이사(張三李四)만이 아니다. 사회지도층도 기꺼이 반칙을 범한다. 1931년 9월 영국 정부의 금본위제 포기 발표에 앞서 영국 파운드화를 대규모로 공매도해 백만장자가 된 프랑스 총리 피에르 라발이 대표적이다. 어디 라발뿐인가. 내부정보와 공매도로 시장을 교란한 사례를 책으로 묶으면 두툼해지게 마련이다.

한미약품 사태가 갈수록 가관이다. 처음엔 한미약품이 지난달 29일 오후 7시6분에 받았다는 ‘수출계약 해지 통보’ 악재를 왜 30일 오전 9시29분에 늑장공시했느냐가 관심사였다. 장 개장 후 30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틈에 무더기 공매도가 쏟아졌다. 내부정보를 아느냐 여부로 승패가 갈렸다는 뜻이다. 즉각 불공정거래 의혹이 불거졌고 금융당국의 합동조사가 시작됐다.

며칠 지나니 이젠 좀 어지럽다. 비린내가 너무 지독해서다. 공시 전날 밤 카카오톡을 통해 악재가 유출됐다는 제보가 있고, 계약 해지 통보가 왔다는 29일의 하루 전에 사내에 정보가 돌았다는 풍설도 있다. 30일 장 개장 전에 기관 투자자는 거의 다 악재 공시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증시 관계자 언급도 어제 공개됐다. 이게 정상적인 시장인가. ‘야바위판’까지 연상되는 국면이다. 내부정보와 공매도, 이 고질적 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국내 법제의 효력, 시장의 건전성도 함께 오르게 됐다. 거듭 혀를 차게 된다.

주식시장에는 두 종족이 산다. 곰과 황소다. 곰은 주가 하락에 베팅을 하는 약세장 투자자다.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판 뒤 나중에 싼값에 사들여 되갚는 공매도를 전가의 보도로 쓴다. 황소는 정반대다. 강세장을 기대하며 주식을 사들인다. 헝가리 작가 프란츠 몰나르는 “다른 사람들을 빠뜨리기 위해 무덤을 파는 사람”이라고 질타했지만 그렇다고 곰 종족을 나쁜 부류로만 몰 수는 없다. 공매도도 그렇다. 시장 과열을 막는 등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으니까.

한미약품 사태에 등장한 곰과 공매도는 차원이 다르다. 불법 사익 추구를 일삼는 못된 곰 종족이 우글거린다는 대형 의혹을 불러일으키니까. 불법 네트워크가 제도화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번지니까. 합법적으로 투자하는 선량한 곰도 못 참아 원성이 자자한 판에 어찌 못된 곰까지 참아내겠나. 일벌백계로 다스려 혼뜨검을 내야 한다. 못된 곰을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법제상 허점도 보완할 일이다. 이 파문은 주식시장 등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와 직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기존 규제 법제는 차라리 몽땅 폐기하는 게 낫다. 야바위꾼들만 야바위판에서 놀게 말이다.

코스톨라니는 ‘부자가 되는 3가지 방법’을 말하곤 했다. “부유한 배우자를 만난다.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갖는다. 주식투자를 한다”는 3가지다. 코스톨라니 삼촌이 말했다는 ‘재산을 탕진하는 3가지 방법’도 있다. “가장 빠른 것은 룰렛(카지노 도박), 가장 즐거운 것은 여자, 가장 어리석은 것은 주식투자”다. 두 3가지 방법의 공약수는 주식투자다. 한국의 주식투자는 어느 쪽에 속하게 될까. 코스톨라니의 3번째인가, 코스톨라니 삼촌의 3번째인가. 한미약품 파문에 임하는 사법·금융당국의 대응 능력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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