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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코스타리카의 생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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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9 23:17:56 수정 : 2016-10-09 23: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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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후 군대 없애 평화·인권 상징
대통령 연임 금지 권력남용 방지
한국헌법 부침 심해… 개헌론 발화
국민감동 이끄는 결과물 내놔야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 권역별 창립총회 취재를 위해 중남미를 찾았다. 중남미의 첫 방문지 코스타리카는 여유로웠다. 열대 고산지대에 자리한 수도 산호세는 상쾌했고 깨끗했다. 오후마다 쏟아지는 비가 도심의 열기를 식혀줬다. 영세중립국 코스타리카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다. 혹독한 내전을 경험한 뒤 1948년 군대를 없앴다. 군대 유지 비용은 교육과 의료 등에 투입했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정쟁과 자연재해, 경제위기로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넘쳐나는 한국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 중미 창립총회에는 여성 부통령인 아나 엘레나 차콘이 참석했다. 파나마와 한국 순방에 나선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대통령을 대행하는 최고권력자의 행차는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경호원은 2명에 불과했다. 호텔에 들어서는 부통령을 향해 “푸라 비다”(Pura Vida)라고 말을 걸었다. 푸라 비다는 “인생은 행복한 것”, “잘될 거야” 등의 뜻을 지닌 말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인생관이 담겼다고 한다. 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보냈다. 2014년 대선에서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당선된 그녀는 2018년 대선의 유력 주자다. 4년 임기의 대통령은 차기 선거에 나설 수 없다. 코스타리카의 독특한 헌법 규정 때문이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없앨 만큼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중남미의 ‘평화와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는 코스타리카는 내전의 아픔을 겪었다. 코스타리카는 1821년 중남미연방 일원의 자격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가 1938년 연방을 탈퇴했다. 1948년 무장 노동자들과 군대의 충돌로 내전이 발생했다. 2000여명이 사망한 내전에는 이웃나라인 니카라과와 미국도 개입했다. 교육자 출신으로 이상적인 민주주의자였던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 당시 대통령은 내전을 겪고 이후 평화와 민주주의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없애는 노력에 나섰다. 먼저 밀어붙인 것은 군대 해산이었다.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의 반대 등으로 몇 차례 부침을 거듭했지만 ‘영구적 기관으로서 군대는 폐지한다’는 평화 헌법 12조의 뜻은 지켜졌다.

코스타리카 헌법에서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연임 금지 조항이다. 이들이 권력에 취할 때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한 차례 임기를 거르면 대통령이나 의원 모두 중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의원들로서는 정권 연장에 노력하거나 권력자에게 줄을 설 필요가 없어졌다. 의석은 57석뿐이지만 시민행동당과 민족해방당 등 좌·우파 계열은 물론 기독계 정당을 포함해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이 의원을 배출하게 됐다. 의원들은 임기 1년의 의장을 중심으로 협치를 통해 국가를 위해 더 노력하게 됐다. 이런 평가 덕분인지 1821년 제정 이래 14차례나 수정된 헌법은 1949년 이후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 헌법은 1948년 제헌 이후 9차례나 손질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간으로 하고 있지만 6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다. 임기말 대통령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대선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한 대결로 치닫는 것도 문제다. 최근 여권이 개헌 논의 수용 가능성을 흘렸다. 개헌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던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에서 물꼬를 트면서 거의 한 세대 만에 개헌 논의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어떻게 고쳐나갈 것이냐다. 여권이 정국 돌파 카드로 정략적 차원에서 개헌 논의에 접근한다는 의구심도 있지만, 기왕에 시작된 개헌 논의라면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차제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중임은 보장하지만 연임은 금지하는 코스타리카의 제도를 참고해볼 만하다. 정치인들은 반발하겠지만 정쟁으로 날을 지우새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비춰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제도이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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