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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김영란법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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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3 23:21:56 수정 : 2016-10-13 2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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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금품수수 신고 의무화
천륜 거스르는 과잉 입법
주무기관 수장도 위법 헷갈려
‘선무당 규정’ 시급히 손질해야
법은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국민의 기대 속에 시행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이라면? 대답을 내놓기 전에 2500년 전 공자의 시대로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기 바란다.

어느 날 섭나라 왕이 공자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마을에 정직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한번은 자기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치는 것을 보고 관아에 고발했습니다. 정말 정직한 사람이 아닙니까?” 공자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것과는 다르군요. 우리 마을에선 아버지는 반드시 아들을 위해 잘못을 숨겨주고, 아들은 반드시 아버지를 위해 그 잘못을 숨겨줍니다. 부자가 서로의 잘못을 숨겨주는 것이 바르지 못한 듯 보이지만 정직은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공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도둑질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범법행위이지만 가족이 나서서 고발하는 일은 옳지 않다. 부자간의 천륜은 법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예전 이 이야기를 접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청탁금지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새 법에 따르면 공직자와 교직원, 언론인은 배우자가 금품 등을 받은 사실을 알면 즉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살벌하다. 가족의 불온한 언행을 당국에 고발하는 북한의 ‘빅브라더’ 풍경이 떠오른다.

청렴사회 실현은 우리 시대의 지상과제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배우자에게 신고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다. 공직자 남편이 아내가 받은 금품이나 향응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신종 연좌제나 다름없다. 부부의 내실을 기웃거리는 청탁금지법의 그림자가 여간 불경스럽지 않다.

청탁금지법은 이미 궤도를 이탈했다. 2011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할 당시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쏙 빠지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회의원의 청탁과 민원 활동을 제약한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사립 교원과 언론기관을 끼워 넣어 그럴싸하게 포장됐다. 대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강연료까지 국가가 책정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진짜 코미디는 법 시행 이후에 일어났다. 어떤 행위가 구체적으로 위반되는지, 주무 기관인 국민권익위조차 숙맥이다. 국민이 문의하려고 해도 권익위의 전화는 온종일 불통이다. 기관의 수장인 성영훈 위원장은 한술 더 뜬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를 주거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도 위반이 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법령 위반이 맞다”고 답했다. 바로 며칠 전 “성적 평가철에 받았다면 몰라도 위법이 아니다”고 했던 자신의 인터뷰 발언과 배치된다. 기관장조차 오락가락하는 규정을 대체 어떻게 지키라는 건가.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황당한 신고가 있었다.

부패 척결의 대의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선진사회로 발돋움하려면 곳곳에 기생하는 부패의 독버섯을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명분과 취지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란 법은 없다. 생사람을 잡는 것은 일에 서툰 ‘선무당’이니 말이다. 청탁금지법은 이미 과잉 규제로 서민 경제를 잡도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주무기관의 무뇌 행정은 설상가상이다. 이런 ‘선무당 입법’, ‘선무당 행정’이 없다.

훌륭한 의사는 부패의 환부만 정확히 도려낸다. 건강한 장기까지 헤집는 수술은 돌팔이나 하는 짓이다. 가뜩이나 천륜이 무너진 세상이다. 부자간의 소송이 범람하고 부부·사제 간의 윤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처지에 국법까지 도덕의 추락을 부채질하겠다니…. 천륜과 인륜을 침범하는 무엄한 법규는 마땅히 고쳐져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천륜이 숨쉬는 ‘공자의 나라’이지, 천륜이 무너진 ‘정직한 섭나라’가 아니지 않는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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