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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8> 육아로 힘든 것도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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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5 14:00:00 수정 : 2016-10-15 10: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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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이를 돌보면서 자주 되뇌인 말이 있었다. “이것도 한 때다.”

출산부터 100일까지 조금만 짬이 생기면 꾸벅꾸벅 졸 정도로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이 때의 아이는 엄마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연약한 생명이었다. ‘우리 애가 언제쯤 밤에 통잠을 잘까.’ 100일까지 디데이를 셌는데 만성 피로에서 벗어나는 날은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한번에 10시간 이상을 자고 깔깔거리며 뛰어다닐 정도로 부쩍 자랐다. 시간은 거북이 걸음인 것 같으면서도 화살처럼 날아간다.

아이가 뒤집기를 하던 때의 모습. 불과 지난해인데 이 시기가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일찌감치 느끼게 해준 사람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태어난 늦둥이였다. 스무살에 다섯살이었다. “너 동생 아직 중학생이야?”, “이제 고3이야?” 친구들은 동생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언제 크냐?”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의 형제자매는 우리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삶의 궤적을 밟았다. 그들의 동생들은 우리들처럼 30대가 됐다. 내 동생만이 군입대, 대학졸업, 구직 활동 등 청춘의 과제를 앞둔 스무살이다.

최근에는 꼬꼬마 동생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동생에게 자주 했던 말은 “누나 바빠. 누나 시간 없어”였다. 동생은 나이가 많은 부모님보다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밤마다 내 방문 앞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나 누나방에 있으면 안 돼?” “누나 바빠. 나중에 들어와.” 나는 매번 거절했고 동생은 내가 없을 때만 누나방에서 혼자 놀면서 형제의 존재를 느낄 뿐이었다.

지금 같으면 하루 일과를 묻고 함께 영화도 볼 텐데 당시 나는 대화 수준이 맞지 않는 동생의 요구가 귀찮게 느껴졌다. 학점, 아르바이트, 취업에 짓눌려 바쁜 척 했다.

동생에게 베푼 건 가끔씩 손에 쥐어주는 용돈 정도였다. 동생은 친구들과 놀다가 동네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하면 “누나∼∼∼∼∼” 기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내 허벅지에 가슴을 부딪치며 씩 웃었다. “나 500원만.” 1000원도 아니고 항상 500원이었다. 이것만큼은 흔쾌히 들어줬다. 동생은 500원을 들고 다시 친구들 무리에 섞였다.

뒤집기조차 끙끙거리며 했던 아이가 이제는 깔깔거리며 신나게 뛰어다닌다.
결혼 하고 아이 낳기 전 인생에서 가장 평온했던 시기를 맞았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동생은 어느새 청년이 돼 있었다. 더 이상 누나를 찾지도 않았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 일과를 소화하느라 바빴다. 쟤가 언제 저렇게 컸지. 동생이 태어난 순간 간호사가 안고 있었던 그 신생아의 모습은 기억하지만 성장과정은 희미하기만 하다. 부모가 아니라 형제니까 그럴 수 있지, 싶으면서도 아쉽고 미안했다. 지난해 동생이 연애를 끝내고 막막한 눈빛으로 저 혼자 시간을 견디는 걸 보면서 ‘쟤가 진짜 성인이 됐구나’ 싶었다.

나의 꼬맹이였던 동생이 다음 달 군입대를 한다. 이제는 “누나랑 같이 가주면 안 돼?”, “같이 놀러가자” 등 내가 동생의 시간을 요구할 뿐 이 애는 누나와의 시간을 바라지 않는다. ‘애들 크는 건 한 순간이구나, 형제든 자식이든 다 자라면 제 길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뿐이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매일 저녁 내 방에 들어오고 싶어하고 나를 따라하고 싶어했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없다. 형제끼리 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 앞으로 우리는 간간히 우정을 나눌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 세대 많은 남성들이 “젊은 날 왜 그렇게 바깥으로 돌면서 애들 크는 걸 보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고 하는 심정을 나는 가슴 깊이 공감한다. 동생이 군 생활을 하며 외부와의 연결 고리를 갈구할 때 편지, 면회, 선물 등을 동원하며 이제라도 동생의 요구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부모에게 꼭 붙어있고 싶어하는 시기도 한 때인 것 같다. 이 시간을 즐겨야 겠다. 게티이미지 제공.
동생과의 경험은 나의 양육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 아이로 인해 여유 없는 생활은 모두 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볼 때마다 어느 새 자라버린 동생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부모와의 스킨십을 거부하고 중학교 때부터는 함께 나들이 다니기도 쉽지 않다고 인생 선배들은 조언했다. 매일 밤 잠든 아이의 볼을 만지고 손으로 허리를 휘감으면서 ‘이것도 지금이니까 마음껏 할 수 있는 거네’라며 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그런 마음이 힘든 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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