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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순실개헌’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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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5 23:35:26 수정 : 2016-10-25 23: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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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깜짝 제안 진정성 부족
국회 주도로 짧고 강하게 논의해야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국회에서 개헌을 제안한 것은 공교롭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개헌 논의를 공식 요청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된 24일 ‘임기 내 개헌’을 선언했다. 두 지도자의 개헌 제안은 시기만 비슷할 뿐 형식과 여건, 내용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아베 총리가 개헌 시동을 걸면서 내세운 중심 단어는 국민이었다. “헌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며, (개헌) 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임”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개헌의 주체는 국회 헌법심사회다. 박 대통령도 국민을 거론했다.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헌 주체는 정부다. 국민을 대하는 양쪽의 시선은 여기서 차이가 난다. 아베 총리는 몸을 낮추고 박 대통령은 높은 곳에 있다.


백영철 편집인
국민을 향한 시선이 다른 것은 개헌 내용의 수준 때문일까. 일본의 개헌은 나라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향이다. 현행 헌법의 핵심조항인 9조1항을 전쟁 및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로 바꾸고, 9조의 2를 신설해 자위대를 정식군대인 국방군으로 부르는 내용이다. 국가 개조 차원인 것이다. 한국의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에 머물고 있다. 박 대통령은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래 한국의 개헌론은 내각제로 가니, 이원집정제로 가니 하는 권력다툼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미래 한국의 비전과 통일시대에 대비하는 담론은 없다.

정치적 여건의 차이도 적지 않다. 일본 국회에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세력은 재적 3분의 2가 넘는다. 총리 지지율도 60% 안팎으로 높다. 조건이 이리 좋지만 아베 총리는 무리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아베에 비해 절대 불리한 여건이다. 국회의석도 여소야대이고 지지율은 25%로 바닥을 치고 있다. 여건이 이리 좋지 않지만 임기말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건이 나쁘면 진심, 진정성이라도 국민에게 내보이고 인정받아야 한다. 진정성은 평소의 언행과 태도에서 축적된다. 아베 총리는 오랜 기간 개헌을 말해 왔다. 그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평화헌법 개헌이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것임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개헌을 하자는 현직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쏘아붙이고 집권 뒤엔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묵살했다. 그래 놓고 갑자기 군사작전하듯, 깜짝쇼를 하듯 터뜨렸다. 한건주의로 비치고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피할 도리가 없다.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사려면 희대의 최순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기 전에 개헌을 제안해야 했다.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나라를 집어삼킬 기세다. ‘십상시’의 국정농단 보도에 펄쩍 뛴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무 공적 직책도 없는 최순실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비서실 인사 내용까지 실시간으로 보고했다면 그야말로 국기문란이다. 아무 관계가 없다며 화를 내던 박 대통령은 어제 눈시울을 붉히며 최순실 사건의 실체를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해방 이후 수많은 국기문란 사태가 있었다. 핏줄 비리도, 측근 비리도 봤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버지(최태민)에 이어 딸(최순실)에까지 대를 이어 휘둘리는 것은 처음 본다.

일의 선후에서 의당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규명이 급선무다.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무기력증세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믿을 수 없는 검찰이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박물관에 보낸 녹쓴 칼을 다시 꺼내 날카롭게 갈고, 그 칼을 들고 나라 구하는 길에 나서야 한다. 제발 국민을 생각한다면 야합과 굴종에서 벗어나라.

박 대통령은 최순실 파도에 휩쓸려 안위가 위태롭다. 급속도로 신뢰의 추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안보와 민생을 챙기기에도 역부족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신뢰의 위기에 처한 것만큼 나라에 위험한 것은 없다. 북한 핵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삼성과 현대가 보여주는 한국경제의 위기가 아무리 커도 이만한 국가비상사태는 없다. 야당이 ‘순실개헌’이라고 조롱하는 것만으로도 힘은 빠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을 매개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를 접는 게 순리다.

박 대통령이 빠지더라도 대통령이 개헌논의의 물꼬를 튼 만큼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선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숱한 대통령의 연속적인 실패를 언제까지 볼 건가. 국민의 선택이 잘못이지만 제도의 잘못도 있을 수 있으니 제도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처럼 국회에서 책임지고 논의하는 게 정도다.

여야의 탐욕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때다 싶어 권력을 나눠 먹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일 수도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같은 제도는 우리에게 맞지 않을뿐더러 정파 간 밥그릇 싸움이 된다는 점에서 논의과정에서 혼란만 커질 것이다. 국회의 권력집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 국민투표에서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국회가 주도해 성사하려면 개헌 논의는 짧고 강하게, 원포인트 개헌에 그쳐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개척할 출중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 주는 개헌이 긴요하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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