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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특검 수모,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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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7 00:22:07 수정 : 2016-10-27 0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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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의혹에도 미적대며 실기 / 대통령 OK사인 받고 수사나서 / 앞으로도 계속 정권 눈치 보면 / 특별검사제 의존하는 수밖에 “한밤에 검찰청사를 환하게 밝힌 불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불철주야 일하느라 옷깃에 말라붙은 땀은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다.”(박상길 전 부산고검장) “진실의 칼은 깨끗한 손에 쥐여 있을 때만 진정한 힘을 가진다.”(정상명 전 검찰총장) “어려움이 닥치면 더욱 단합하는 우리 검찰의 훌륭한 전통이 있기에 염려를 접어두고 기분 좋게 떠나간다.”(김경수 전 대구고검장) 선배 검사들이 검찰을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남긴 말이다. 최순실게이트를 바라보는 요즘 검사들은 어떤 심정일지 무척 궁금하다.

결국 특별검사제 도입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사에 하나의 오점이 더해졌다. 모든 게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한 달여 전 첫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검찰 밥 좀 먹었다는 검사라면 예사 사건이 아님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미 2014년 11월 세계일보를 통해 예고편까지 보도된 상태다. 전경련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을 걷어서 만든 재단의 이사장이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관련된 인물이라면 그림은 바로 그려진다.

엉덩이 무거운 검찰인 줄 잘 안다. 한보사건, 진승현게이트, 최규선게이트와 같은 대형 사건 초기에도 검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의혹만으로 수사할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래도 대통령 OK사인만 기다리며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여론의 물결이 차오르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못한 듯 수사에 나서곤 했다.

지난달 시민단체 고발로 곧장 수사에 나서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치자. 이달 초 국정감사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미르재단 모금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발언이 공개된 직후 움직였어야 한다.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해산해 새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한 상태였다. 두 재단 자료가 훼손될 상황이었다. 아니 이미 미르재단 입주 빌딩에서 문서를 파기해 버린 대용량 쓰레기봉투가 목격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이 뚜렷했다.

굴지의 대기업에 수사관 240여명을 보내 이 잡듯 뒤지던 검찰의 호기는 정작 필요할 때 꽁무니를 뺐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해 놓고서는 보름간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실상의 수사 지시를 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나 꾸무럭대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 경찰 형사사건 지휘 외에 토지 개발이나 건설 관련 사건을 주로 맡는 부서에 사건을 배당했으니 수사 의지를 의심받을 만했다.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검찰 수사는 한 박자가 아니라 두 박자, 세 박자가 느릴 수밖에 없다. 특수부 등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해 본들 이미 뒤늦은 일이었다. 게다가 관련자 출국정지, 대규모 압수수색으로 이어지는 수순은 보이지 않고 최씨의 통화명세 확보부터 나서는 엇박자라니. 그 덕에 최씨가 거주했던 빌딩 일대 쓰레기 더미에서는 최씨의 다이어리가, 사무실 주변에서는 최씨 국정농단의 민낯을 보여주는 태블릿PC가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제 대통령의 사과 회견 이후 새로운 의혹이 또 터져나왔다. 최씨가 사무실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아랫사람 다루듯하는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검찰은 어제 뒤늦게야 압수수색에 나섰다. 안타까움을 넘어 딱해 보일 정도다.

처음부터 스텝이 꼬였으니 수사가 잘 될리 없다. 특수부 검사 등을 보강해 7명으로 늘렸다지만 이미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해외 체류중인 관련자 신병 확보 방안 강구, 미르·K스포츠 재단 자금흐름 분석, 최씨의 국정개입 의혹, 차은택씨 등의 문화사업 특혜 의혹, 최씨 딸에 대한 승마운동 지원 및 고교·대학 학사관리 관련 의혹 등. 여기에 앞으로 최씨의 인사개입 의혹이 봇물 터지듯 불거질 게 분명하다. 옛 대검 중앙수사부 정도가 달라붙어야 할 만한 비중의 사안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의 책임이 크다. 검찰이 이렇게 정권 앞에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기대를 접어야 한다. 검찰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특별검사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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