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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30>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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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9 14:00:00 수정 : 2016-10-29 17: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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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부부끼리만 살던 집에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남편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한쪽 눈에 염증이 생긴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던 날, 우리는 연약한 생명을 함께 돌보는 유대감를 느꼈다. 남편은 “고양이가 오고 집안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우리집 고양이들은 길에서의 삶을 힘들어했던 길냥이들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를 캣타워에 올라 있는 고양이가 내려다보고 있다. 고양이와 아이는 아직 내외하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은 “고양이들만 없었으면…”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편의 동의가 있었지만 고양이와의 동거를 제안한 건 나였다. 고양이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첫째 고양이의 사연을 보고 “우리 이 고양이랑 함께 살자”고 말했다. 첫째 고양이는 한겨울 추위에 경기도의 한 가정집 앞에서 3일간 울부짖다가 구조된 냥이였다. 친정 아빠는 나의 출산 이후 “애가 있는데 고양이라니”라며 혀를 차셨고, 시어머니도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고양이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셨다.

“애한테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가족인데 어떻게 버리냐. 못 헤어진다.” 주변의 질책에 나는 완강히 저항했다. 대소변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고양이는 털 문제만 없다면 함께 살기에 결점이 없는 동물이다. 이제는 아이가 제법 자라서 털 문제로 덜 고생하지만, 돌 전까지 나는 털 치우는 노예로 살았다. 눈을 뜨자마자 청소기를 돌렸고 다시 침구 청소기로 아기가 생활하는 곳을 집중 청소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지냈던 첫 집에서 냥이들이 부엌 창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지금은 아이 용품을 마음대로 사지 못할 때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거실 쇼파만 해도 냥이들이 온지 얼마되지 않아 미니 맹수들의 거센 발톱질에 곳곳에서 속살이 터져나왔다. 한 때 “안 돼”라며 제지했지만 곧 포기했다. “이미 버린 몸(쇼파)이다. 마음대로 뜯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보다 내가 더 설레면서 구입한 아이 전용 쇼파마저 초토화됐을 때 “아이고, 아이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이는 개구진 표정으로 쇼파의 상처에서 솜털을 쏙쏙 뽑아냈다. “이것도 고양이들이 뜯겠지?” 나는 아이 용품을 구입하기 전 냥이들의 행동패턴을 고려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유가 뭘까. 가끔씩 곰곰이 생각해본다. 가족이 됐다는 책임감, 작은 생명이 주는 위로, 지난 시간 쌓은 유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떠올랐다.

비오는 어느 날, 냥이들과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비 온다. 저게 비야”라며 아이를 베란다로 데려갔다. 거리는 물기에 축축히 젖어있었다. 색색의 우산들이 행인의 발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고양이들도 나를 쫓아 베란다 창가에 섰다. 커다란 눈망울로 조용히 빗물을 바라본다. ‘쟤네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동물에게 비오는 날의 풍경은 어떤 인상일지 궁금해졌다. 고양이는 조금이라도 물이 튀면 바르르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는 동물이다.

아이의 생후 100일부터 아가방에 출입할 수 있게 된 첫째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아이 옆으로 이동하더니 철퍼덕 누워버렸다. 이때만 해도 키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훨씬 큰 형아다.
‘길 위의 생활을 힘들어했던 녀석들이 비오는 날 바깥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문득 어떤 생명에게 내가 안식처가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촉촉해졌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우리 고양이들에게 쉴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이면서 ‘왜 사는가, 무얼 위해 사는가’라는 생각을 잊고 지냈는데 살아가는 의미가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냥이들에게 나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얼마 전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왔는데 오랜 만에 만난 고양이들이 ‘냐옹’거리며 하루 종일 쫓아다녔다. 낯가림 심한 녀석들이지만 내 앞에서는 벌러덩 배를 내놓고 드러누웠고, 갸르릉거리며 팔에 허벅지에 조그마한 몸통을 부벼댔다.

아이와 고양이는 현재 내외하는 관계다. 힘 조절을 못하는 아이에게 잡히면 뜯기고 꼬집히는 탓에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줄행랑을 친다. 잘됐다 싶었다. 궁지에 몰린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발톱을 세울까봐 걱정하던 차였다. 한 집에서 바라만 보는 관계로 지내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첫째 고양이를 구조한 분이 찍은 녀석의 길냥이 시절 모습. (왼쪽 사진) 이제는 먹고 자고 노는 상팔자가 됐다.
언젠가 아이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보다 작은 생명을 돌보는 기쁨과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나누게 되는 동물과의 우정, 생명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알게 될 것이다. 비오는 날 고양이들과 함께 창밖의 세상을 응시할 때면, 우리 모두에게 안식처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에서의 삶을 힘들어했던 녀석들이 없었다면 그저 비내리는 날로만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기 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쉴 곳을 찾아 빗물 사이사이를 달렸을 녀석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의 상황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 안도감은 악다구니 쓰는 일들에 대해 ‘내게는 보금자리가 있고 가족이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내려놓자’는 초연함으로 이어진다. 물을 질색하는 녀석들이 평화로운 눈빛으로 비를 바라보는 모습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깨닫게 한다.

‘인간보다 생애 주기가 짧은 동물과의 동거는 삶을 더욱 성찰하게 해준다’는 말을 나는 깊이 공감한다. 가족이어서, 사랑하는 생명이어서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이가 있는데 왜 고양이를 키우냐?”며 질책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하고 싶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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