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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고독함으로 성인이 돼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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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3 21:30:26 수정 : 2016-11-03 21: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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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종속된 권력자 꼭두각시일 뿐
진정 혼자 되는 순간이 위기이자 기회
헬리콥터맘, 캥거루족이라는 유행어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여전히 집착하는 엄마’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자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점집을 드나들거나 주변 사람의 ‘감 놓아라 배 놓아라’식 참견에 의존하는 사람은 평생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으로 평생 정신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신의 독립, 정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독락당 대월루(獨樂堂 對月樓)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조정권, ‘독락당’ 중에서)


정여울 작가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마음속에 거대한 절벽이 하나 세워지고,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암자가 그려진다. 그토록 높은 곳에 올라가 용맹정진하고 싶은 내 마음도 함께 그려진다.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구해 부모로부터 독립한 그날. 나는 ‘드디어 해방됐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전’이 됐다. 내가 월셋방을 얻은 그 건물만 정전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정전이었다. 촛불도 없고 랜턴도 없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걸 보면 사고였던 것 같다. 나는 일단 무서움을 무릅쓰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거리 전체가 어두우니 내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된 것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멈춘 느낌까지 들었다. 멀리 큰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길 건너편은 다행히 불빛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건너 불이 켜진 첫 번째 편의점에 들어가 양초를 샀다. 단지 ‘양초’가 아니라 마치 ‘어둠을 밝히는 희망’을 구하는 느낌이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자기만의 방’을 드디어 얻은 첫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어떤 화려한 인테리어 소품도 아닌 소박한 ‘촛불’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방 안에 들어앉으니 외로움을 오래오래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이 나의 첫 ‘독락당’이었다. 홀로 있어도 더없이 기쁜 곳. 홀로 있어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곳. 이제 다시는 되돌아 나와 ‘속세의 즐거움’ 속으로 내려오기는 힘든 곳. 누구에게나 그런 독락당이 필요하다. 마음 깊은 곳의 고독이 쉴 수 있는 곳. 외로움을 참고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고즈넉한 독락당이 필요하다.

항상 자신의 일을 모두 대리해서 처리해주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엄청난 권력자로 보이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갑의 지위에 있지만 을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너무 많이 망치고 있다. 그들에게 고독할 수 있는 자유, 고독을 통해 진짜 성인이 되는 시간을 보내주고 싶다. 독락당에 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진정으로 혼자가 됐을 때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막상 그토록 원하던 혼자가 되니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바로 위기이자 기회이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내면아이와 작별할 시간인 것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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