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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31> “임신부가 돼 보니 사회의 배려수준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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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5 14:00:00 수정 : 2016-11-05 13: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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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약자석에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데 노약자로 보이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그 자리에 앉는다. 이 자리를 찾아 걸어오는 분이 있으면 비켜드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다.

3년 전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나도 노약자석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되바라진, 배려를 모르는, 노약자의 자리를 탐하는 이기적인 젊은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임신 6개월차였던 지인이 지하철에서 폭행 당한 사례를 들은 뒤부터 인식이 바뀌었다. 그는 뉴스에서 볼 법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A는 지하철에 탈 때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꼈던 임신부였다. 석달간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입원까지 했다. 입덧 기간 오렌지주스로만 연명하면서 태아의 영양상태를 걱정했다. 직장인이었기에 지하철 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 눈을 질끈 감아야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A는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고 했다. 입덧이 시작되는 시기는 배가 부르지 않아 외형으로 임신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눈을 감고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A가 일부 어르신에게 괘씸해보였던 것 같다. 그는 어느 날 한 할아버지로부터 대뜸 발길질을 당했다. 왜 여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같은 칸에 탄 승객의 신고로 경찰이 올 때까지 소란은 지속됐다. A는 “누군가 신고하는 것을 봤는데 딱 두 정거장 지나니까 지하철 수사대가 내가 있는 칸에 타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처벌은 원하지 않고, 다만 노인이 아니더라도 힘든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할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게 잘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A는 그 뒤로도 한번 더 폭행을 당했다. 이 때는 시비 거는 할아버지와 말리는 할아버지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A를 더 서럽게 한 건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꾸지람하는 한 할머니의 반응이었다. 임신과 입덧 상황임을 밝혔지만 그 분은 “너만 애 가져봤냐?”며 노여워하셨다.

A는 “어르신들 중에는 날 걱정하며 챙겨준 좋은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발길질까지 하며 화를 내는 분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노약자석으로 간 건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약자가 돼 보니 우리 사회의 배려 수준이 보이더라”고 했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자”며 노인, 장애인, 임신부에게 지하철 좌석 양보를 촉구하는 그림.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도 ‘노약자석=노인 자리’라는 고정 관념이 있음을 깨달았다. 또 ‘일반석은 우리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약자석에 절대 앉지 않으면서 일반석 쪽으로 다가오는 어르신을 보면 속으로 ‘노약자석으로 가시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에 민감해진 뒤부터는 노약자석이 텅텅 비어 있고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일반석 앞에 승객들이 빼빼로처럼 서 있는 경우를 볼 때면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런 형식주의로 보였다. 배려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과도기적 사회의 모습이었다.

노인, 장애인, 임신부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자리를 양보하는 사회에서는 사실 노약자석이 있을 필요조차 없다. 자리를 양보하는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약자를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형식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부산지하철에서 여성배려칸을 따로 만든 것을 보며 ‘우리 사회의 배려 온도가 높아지고 있구나’ 대신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형식이 아니라 문화가 성숙해져야 하는데 문화가 발달하지 않으니 ‘남성에 대한 역차별’, ‘남성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등 반발과 갈등을 부추기는 형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노약자석은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나 역시 2년 전 임신부로서 지하철을 탈 때면 생각보다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가벼운 산보 등 운동을 하는 건 괜찮았는데 여러 사람 사이에 끼어 1시간가량 가만히 서 있으면 아랫배와 발목이 저려왔다. 주변에 조산한 여성들이 많아 37주 전까지 조산의 두려움을 안고 지냈다. 하는 수 없이 노약자석에 앉았다. 그때마다 지인의 사례가 떠올라 마음이 초조했다. A처럼 폭행을 당하거나 시비 당한 적은 없지만 노여움 섞인 눈초리가 느껴질 때가 많았다. 홑몸으로 험한 일 당하는 거면 그대로 맞서겠지만 연약한 생명과 함께 있으니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이 때의 경험을 생각하며 지금 나는 노약자석이 텅텅 비었을 때마다 그 자리에 앉는다. 아직 마음이 편치 않아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일반석에서 거동이 불편해보이는 어르신과 임신부를 보면 자리를 양보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구분하는 형식보다는 이렇듯 유연하게 배려 문화를 일궈나갔으면 좋겠다. “약자가 되어보니 우리 사회의 배려수준이 보이더라”는 지인의 말이 맴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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