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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어둠. 쏟아지는 불덩이와 물벼락에 세상은 아비규환의 연옥이 따로 없었다. 1985년 11월13일 밤, 콜롬비아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이 폭발해 인구 5만명의 도시 아르메로를 삼켰다. 화산재와 용암 파편이 하늘을 덮고 만년설이 녹아내린 홍수에 도시는 진흙바다에 잠겼다. 폼페이 최후의 날이 이랬을까. 도시 전체의 85%가 흔적도 없이 묻히고 2만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무력하기만 한 인간. 하지만 폐허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여린 생명이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13살 소녀 오마이라 산체스(사진). 무너진 집더미와 굳어버린 진흙에 몸이 끼어 얼굴과 팔만 물 밖에 내놓은 채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데 구조에 필요한 기중기는 도로가 끊겨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 구조대는 발만 동동 굴렀다. 채 피지도 못하고 꺼져가는 가녀린 생명을 눈앞에 둔 고통은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정작 죽음과 맞선 소녀는 차분했다. 구조대 아저씨들에 “피곤하신데 좀 쉬었다 하시라”는 착한 마음 씀씀이에 숙제 걱정까지 했다. 온 나라의 간절한 기도에도 사투 60시간 만에 어린 천사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삶은 가냘프고 짧았지만 소녀의 죽음은 깊고 묵직한 감동으로 사람들을 울렸다.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 소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남긴 지고지순한 울림이다.

김규영 편집위원

△1895년 11월 8일 빌헬름 뢴트겐 엑스선 발견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1992년 11월11일 국내 첫 심장이식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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