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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최순실·대통령, 누가 더 나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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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14 21:48:36 수정 : 2016-11-14 21: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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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막내가 ‘호랑이의 곶감’처럼 겁내는 악당은 ‘엘 차포(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별명)’다. 재작년 미국에서 지낼 때 엘 차포가 땅굴까지 파고 탈옥한 엽기 뉴스가 쏟아지면서 어린 막내 뇌리에 각인된 모양이다. 엘 차포가 우리가 사는 마을에 쳐들어올까 봐 걱정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막내에게 요즘은 최순실이 무서운 모양이다. 뉴스를 보다 슬그머니 다가와 “아빠, 엘 차포랑 최순실이랑 누가 더 나빠?”라고 묻는다. 간단한 질문이건만 쉽게 답해 줄 수 없었다.

예산이 정답인 문제에 ‘최순실’이라고 적은 초등학생의 시험지가 화제에 오르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현 정부 비선 실세의 영향력은 실제로 정부 예산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기획재정부의 한 공무원은 쓰린 속내를 털어놨다. 그 공무원은 박근혜정부 역점 추진 사업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계획을 다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를 했는데 청와대에서 문화융성 쪽을 더 늘리라고 ‘오더’가 내려와 황당했던 기억이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에 파견된 뒤 비슷한 얘기를 여러 취재원에게서 들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순실이 국정농단의 주무대로 문화예술 쪽을 택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방산분야 등 뭉칫돈 덩치가 큰 쪽에 최씨가 구미가 당겼을 수 있지만 그쪽만 해도 전문성이 필요해 손쉬운 문화예술 쪽을 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의 4대 국정기조에 포함된 ‘문화융성’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최종 보고서에는 없었다고 한다. 불과 나흘 뒤인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 갑자기 포함됐는데 여기에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다.

정부가 내년에 편성한 예산안에 이른바 ‘최순실 예산’도 기재부가 파악한 바로는 최소 3500여억원이 반영됐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내년 예산안에 최순실표 사업 명목으로 3569억7600만원이 배정됐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체적으로 파악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선 최순실 관련 의혹이 제기된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3385억7000만원이었다.

물론 문화예술 쪽만 비선 실세의 그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통일 대박 발언이나 불통 인사처럼 현 정부에서 불거진 미스터리한 사건의 고차방정식에 최순실을 넣으면 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다. ‘최순실·박근혜’가 가장 정확한 키워드일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최씨의 뒤를 좇을수록 그에게 의존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이 점점 선명해진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는 이제 전국민적이다. 3·1운동에서 4·19혁명, 87년 민주화운동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의 주역인 중·고등학생의 참여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 주말 3차 촛불집회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이고,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막내가 “최순실이 나빠, 박 대통령이 더 나빠”라고 물어올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답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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