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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남도 들녘 길을 달리다보면 들판에서 연기가 오르는 풍경을 쉬 접할 수 있다. 멀리 지평선에서 연기가 오르는 풍경은 집을 떠난 이들의 가슴을 흔든다.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들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댓잎이 수런거리는 외딴집 뒤란의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정경이라도 차창 너머로 스치면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같이 놀던 아이들은 고샅을 울리는 각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뿔뿔이 흩어져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고, 미처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 텅 비었던 가슴을 지녀본 적 있는가. 그 고샅에 낮게 깔리던 저녁 이내 같은 연기는 허전한 가슴을 감싸고 돌아나갔다.

들녘에 오르는 연기는 아련하지만, 추수가 끝난 후 병충해를 박멸하고 거름을 만들 다목적으로 피우던 들불은 뜨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까만 어둠이 내릴 때 지평선에 일렬로 빨갛게 타오르던 불빛은 높은 지대의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의 온갖 풍파를 일거에 제압해버릴 성난 아우성처럼 다가왔다. 들불에 대적할 것은 적어도 이 세상에선 없어 보였다. 지난 시절 압제에 맞서는 양상에 대해 자주 표현하곤 했던 ‘들불처럼 타오르는’ 같은 수식을 관념이 아닌 실제 풍경으로 어린 시절 그 들녘에서 체험했다.

횡대로 늘어서서 지평선을 달려오는 들불 앞쪽으로 어둠 속에서 춤을 추듯 허공을 날아다니는 불도 보았다. 출타한 어른을 기다리며 밤중에 언덕에서 목이 빠져라 신작로 쪽을 바라보던 남매는 그 불이 순식간에 들판을 건너와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에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불을 말로만 듣던 도깨비불이라고 믿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시골에서 흔치 않았던 자동차의 불빛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누군가 들고 달려오던 횃불이 아니었을까 싶다.

횃불은 오랜 세월 어둠을 밝히는 상징적인 조명 도구였다. 제사나 축제 때 신성한 불을 옮기는 의미로도 각광받았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 아래에서는 음습하고 부패한 것들이 오래 견딜 수 없다. 민낯이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다. 횃불은 신성한 불이지만 분노의 화염이기도 하다. 들불처럼 진군하는 대열 앞에 횃불까지 높이 오르면 제아무리 검질긴 어둠도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촛불만으로 가소롭다면 노도처럼 밀려오는 저 들불은 어떠한가. 그 전열 앞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은 도깨비불이 아니다. 저 성난,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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