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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칼럼] 경문왕의 당나귀 귀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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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0 21:47:50 수정 : 2016-11-20 21: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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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왕 귀소문 통제… 풍문 확산
광화문 촛불 민심 의미 되새겨야
정치인 비전 없이 권력욕만 가득
감추려 말고 진실 제대로 알려야
신라 48대왕 경문왕(861~875)은 초기에는 대사면을 실시하고 국학을 진흥하고 불교를 진흥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점차 귀가 길어져 왕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됐다. 아무도 이 비밀을 알지 못했으나 오직 복두장(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은 이를 알고 있었다. 왕명으로 평생 이를 발설하지 못한 장인은 죽을 때가 되자 아무도 없는 대숲으로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 그가 죽은 뒤 대숲에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싫어한 왕은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게 했으나 그래도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 귀는 길다’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일단 평생 억압된 진실을 토로했으니 속이 후련했을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다시 이를 돌이켜보니 여기에는 더욱 다양한 의미가 발견된다. 다시 말하면 초기의 개혁적인 정치에도 불구하고 반역과 모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문왕은 언로를 통제했을 것이고 이를 억누른 결과 이와 같은 풍문이 퍼져 나갔을 것이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경문왕은 침전에 수많은 뱀의 무리를 불러 모아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궁인들이 두려워해 쫓아버리려고 하자 경문왕은 “뱀이 없으면 과인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면서 물리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뱀을 귀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다. 왕이 잠들려 할 때 뱀들이 혀를 내밀어 왕의 가슴을 덮어주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뱀의 혀는 다름 아닌 간신배들의 아첨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아첨이 없다면 제대로 잠들 수 없는 사람이 경문왕이었으며, 그 비밀은 왕의 이상증세를 세상에 말하지 못한 장인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었을 것이다. 백성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을 많이 가진 왕일수록 잠들지 못해 뱀의 무리라도 불러들여 이들의 혀가 가슴을 덮어주지 않으면 안 됐다는 이야기가 경문왕의 고사다. 몰락해가는 신라의 한 모습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그 후 두 아들에 이어 왕이 된 딸 진성여왕(887~897)의 도덕적 문란으로 인해 신라는 몰락을 재촉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수많은 풍문이 풍문을 낳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국민들의 귀는 풍문을 뒤쫓고 있으며, 풍문이 양산될수록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누가 정말 제때 진실을 밝혀 줄 것인가. 검찰이 나선다고 하지만 정치검찰은 결코 진실을 밝힐 수 없다.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고, 사실이다. ‘일 것이다’가 아니라 ‘이다’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풍문의 주인공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국민들을 허탈과 좌절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급기야는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분노하고 있는 국민의 상당수는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민심이 촛불로 변해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들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지도자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로 인한 국가적 불행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물론 정치인들 모두가 여기에 책임이 있다.

현재 국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지도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조금이라도 더 권력에 가까이 가보려는 정치인들만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오히려 이를 부추기기만 한다면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풍문은 더욱 널리 확산될 것이고, 국가적 위기는 증폭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것은 진실의 힘이다. 국민은 그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 주변을 떠도는 수많은 의혹과 풍문은 누가 덮거나 감출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만약 감추려 하려면 할수록 대나무 숲의 바람 소리는 거대한 폭풍우로 변하게 되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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