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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ports] 야구의 꿈 접고… 김명제, 휠체어테니스로 제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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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4 21:10:15 수정 : 2016-11-24 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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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휘문고를 졸업한 김명제(29·테크니화이버·사진)는 2005년 1차 지명으로 프로야구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당시 신인 최고 계약금 6억원을 받을 정도로 신인 때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미쳤다. 5년 동안 137경기에 등판해 22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불운의 사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언젠가는 빛을 보겠다는 각오로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러던 2009년 12월 말 비극이 찾아왔다. 음주운전 사고로 그는 다리 밑으로 떨어졌고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장애인이 된 그는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스타가 됐다. 그 뒤로 집안에서만 꽁꽁 숨었다. 사람들의 비난이 무서웠고 혹여나 있는 연민의 시선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돌봐주던 어머니가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김명제는 요즘 테니스장으로 출근한다. 수년간 은둔 생활을 뚫고 2014년 4월부터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왔다. 글러브 대신 라켓을 쥐고, 마운드 대신 코트에 섰다. 프로야구 선수에서 이제는 어엿한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변신해 스매싱을 날리며 새 삶을 찾았다.

휠체어 테니스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면서 테니스를 한다. 장애인들이 하는 휠체어테니스는 비장애인 테니스와 달리 선수 움직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투 바운드’까지 허용된다. 그는 휠체어 테니스 쿼드 부문 선수다. 휠체어 테니스는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쿼드는 중증인 선수들이 뛰는 종목이다. 이 부문 국내 선수가 드문 덕분에 지난달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복식 금메달, 단식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야구에서 타자는 중학교 때까지 했거든요. 라켓으로 공을 쳐내는데 안타를 수십번 때리는 쾌감을 느껴요.” 취미로 시작한 테니스였는데 이젠 전문 선수로까지 발전됐다. 사실 처음부터 테니스를 잘 치진 않았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지만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시작한 운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테니스 코트를 도는 데도 힘에 부쳤다.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하는데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탁월한 운동신경 덕분인지 점차 적응했고 2년 만에 국가대표 선수까지 됐다. 올 한 해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명제는 24일 선발전에서 준수한 성적을 낸 덕분에 내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그에게는 두 가지 큰 꿈이 있다. 야구 선수 시절 유망주에만 머문 까닭에 성인대표팀에서 뛰어보지 못한 김명제는 이제 장애인 테니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메달을 노린다. 아직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부족해 지난 9월 리우 패럴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년 뒤 2018 자카르타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나가기 위해 추위에도 라켓을 휘두른다. 기세를 쭉 이어가면 4년 뒤 도쿄 패럴림픽에서도 메달을 딸 가능성이 크다.

“친정과 같은 잠실야구장인데 아직 한 번도 못 갔어요. 두산과 팬들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인데 테니스로 성과를 내고 찾아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아요.” 또 다른 꿈은 잠실야구장에서 마운드에 올라 시구하는 것이다. 응원해준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는 그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어한다. 휠체어 테니스로 새 삶을 찾은 그가 국제대회 메달을 안고 언젠가는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시구자로 서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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